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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문학칼럼: 동갑내기 사촌 인자와 인숙이

오늘은 한민족 최대의 민속 명절인 설날이다.

한국은 주말을 포함해 5일을 쉴 수 있는 황금연휴라서 고향을 찾는 귀성객도 많고 설 기분이 제대로 나지 않았을까 싶다. 긴 연휴를 겨냥한 ‘설캉스’라는 관광상품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즐거운 체험을 통해 명절증후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관광 상품이라고 한다. 바캉스도 아니고 설캉스라니! 못 알아듣는 말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니 내가 미국에서 산 15년 세월이 짧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신조어 따라잡기도 버겁다. 올해는 한인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향의 향수를 달래는 '휴스턴 한인 설날 큰 잔치'를 하지 않아서 구정이라고 해봐야 평일과 다를 바 없고 명절 기분이 전혀 나지 않는다.

고향 생각이 자꾸 나는 걸 보니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다. 구정이면 온 동네가 들썩들썩했는데 그 또한 추억 속 풍경이 되었다. 어느새 내 나이 70이다. 올해는 사촌 인자와 인숙이도 고희를 맞는 해여서 그래서 이번 설이 특별하게 와 닿는다. 인자와 인숙이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열 살 되던 해에 아버지의 귀향을 따라 새장골에 왔을 때였다. 그전에는 동갑내기 사촌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오랜만에 책꽂이 한구석에 먼지를 이고 꽂혀 있는 나주 정丁 씨 족보를 보게 되었다. 70년 전에는 명절이나 제사 때가 되면 큰집 부엌에서 만삭의 세 며느리가 음식을 준비하느라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겠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그려졌다.



동갑내기라 해도 서열은 있다. 인자는 나보다 두 달 빠른 누나다. 4남 1녀 중에 막내로 큰어머니가 마흔 살에 낳은 귀한 고명딸이다. 인숙이는 넉 달 늦은 동생이다. 2남 2녀 중에 장녀로 작은어머니가 스물한 살에 낳은 딸이고, 나는 우리 어머니가 스무 살에 낳은 3남 1녀 중에 장남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큰아버지는 45살, 작은아버지는 23살, 우리 아버지가 26살이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나이 차이가 세 살인데 1949년에 같이 첫아이를 본 것이다. 작은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보다도 한살이 많았다. 족보를 훑어보다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우리 할머니가 작은아버지를 48살에 낳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유복자로. 요즘도 마흔이 넘으면 아기를 갖기가 어렵다는데, 일제강점기에 50이 다 되신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할아버지는 환갑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는 아흔두 살까지 장수하셨다.

인자와 나는 새장골에 살았고 인숙이는 불광동에 살았다. 동네는 달랐지만 우린 은평국민학교 동기동창이다. 봄에는 작은집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 먹고, 여름방학 때면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서 같이 과외공부를 했다. 명절이나 제사 때는 5촌 아저씨들까지 종갓집인 큰집에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곤 했다. 유년 시절 일찍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어른들 말씀에 우리는 늦게까지 조잘거리다가 한 이불 속에 어울려 자면서 지지고 볶던 추억이 새롭다.

국민학교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우리 집 앞마당에 있던 펌프에 마중물을 붓고 급히 펌프질을 하다가 왼손 새끼손가락이 펌프 핸들에 찍히는 바람에 피를 많이 흘렸다. 부모님은 가게에 계셨는데 같이 있던 인자가 겁먹은 동생들을 대신해서 응급처치를 해주고 병원까지 데려다준 고마운 일도 있었다. 우리 셋 중 인숙이가 제일 활달하고 씩씩했다. 인자는 성격이 나와 비슷한데 어릴 때부터 남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이 있었다.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애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는데 어떤 때는 약이 많이 올라 혼자 울 때도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인 중학교 때 우리 가족이 새장골을 떠나 경기도 고양군 지축리로 이사를 했고, 그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영등포 신길동으로 다시 옮기는 바람에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인숙이는 활발한 성격대로 좋은 남자를 빨리 만나서 부산으로 시집을 가는 바람에 통 만나지 못했다. 인자는 명절 때 가끔 만나곤 했다. 하지만 인자는 내가 군 복무를 하던 3년 동안 대학신문도 보내주고 편지도 보내주어 힘든 군 생활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맙다.

올해는 세 동갑내기가 고희를 맞게 된다. 10살에 만나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인자는 불어 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한 후 서울에 살고, 인숙이는 억척스러운 경상도 아지매가 돼서 여전히 부산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역만리 떨어진 휴스턴에 살고 있어 만나 본지도 오래됐다. 오랜 시간 준비한 자전 에세이가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책이 나오면 서울 나들이를 할 생각이다. 그때쯤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봄이면 인숙이네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먹고, 여름에는 인자네 밭에서 토마토를 따먹으며 연신내에서 뛰어놀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밤을 새우지 않을까 싶다.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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