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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칼럼]사뭇 다른 전범 국가 독일과 일본

도국근성(島國根性)이라는 말이 있는데 섬나라 사람들에게 뿌리박힌 성질, 곧 속이 좁고 너그럽지 못하지만, 단결과 독립심이 강하고 남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배타적인 속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면모가 확연히 드러나는 실상이 위안부 문제와 독도의 영유권 주장이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데 만족하지 않고 더 넓은 땅을 차지할 속셈으로 1937년 중국을 침략한다. 그게 바로 중일 전쟁이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므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으로 한국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 공급을 위해 탄환을 만들려고 놋숟가락까지 거둬서 갔고, 인력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조선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갔다. 남자들은 군인이나 학도병으로 아니면 탄광 노동자로 ‘징용’ 되어 끌려갔고 여자들도 학생이든 유부녀든 가리지 않고 ‘근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서 군복이나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만드는 곳에서 일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이 저지른 가장 비인간적인 만행은 한국, 중국 및 동남아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 일본군의 성적인 충족을 채워주기 위해 여자들을 위안부로 만든 일이었다.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거나, 간호사로 가자고 속여서 데려가기도 했고, 경찰에게 붙들려 강제로 끌려간 여자도 있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폴란드는 1939년부터 45년까지 나치 침공에 따른 학살로 600만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독일은 전후에 나치 학살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1972년 나치 생체의학실험 희생자, 1975년 강제노동자에게 보상했고 통일 이후에는 독일 폴란드 재단과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프로그램’을 통해 4차례에 걸쳐 피해자에게 보상해 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독일은 폴란드에 2012년까지 890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전쟁 후에도 계속 감춰져 있었고, 1990년에 이르러서야 여성 단체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고,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처음으로 용기 내어 말하면서 비로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뒤 많은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증언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숨겨진 역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을 계속해서 들추어내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아베 총리는 평창올림픽을 참관하러 와서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곳곳에 세워진 ‘소녀 위안부상’은 그들에게 눈엣가시인 셈이다. 같은 전범국으로서 독일의 태도와는 상반된 면을 보인다. 독일에서는 나치와 관련된 것을 사용하는 것은 교육과 연구 목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범죄로 취급된다.

이토록 일본이 주위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역사를 왜곡하고 말살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젊은이들이 국가관이나 애국심이 식어 가기 때문에, 그리고 조상들의 역사적 잘못을 덮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일본인이 최고라는 자긍심을 심어주려는 잘못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국근성의 뿌리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결과이다.


김태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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