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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카페] "시를 부르고, 노래를 짓는 시인”

문학과 음악 사이 '낭만 가객' 박양자 시인

시가 곡이 되고, 곡이 곧 시가 되는 글감의 선율. 그 과감한 조합을 가능하게 하는 시인의 귀한 재주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보통은 인터뷰하기 직전 빳빳하게 윤기 흐르는 시집부터 선보이고 그 안의 내용에서 자신의 첫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박양자 시인이 내보인 건 혈색을 잃고 누렇게 변해 만지면 금세라도 바스러질 듯한 시집 한 권. 한자로 4290(1957년) 10월 5일이라 표기되어 있고 지면에는 ‘창 (박양자)’이라는 시가 한 편 박혀 있다. 박 시인은 “올해로 딱 60년 전이네요. 신성여중에 다닐 때 발간된 교내 시집 <녹나무> 에 제 시가 난생처음으로 활자화되어 실렸는데, 그게 제가 문학에 빠지게 된 블랙홀이 될 줄은 몰랐죠.”

박양자 시인은 산 좋고 물 맑은 낭만의 섬 제주도 출신이다. 그 청정 환경을 머금고 여고 시절까지 넘치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접하며 눈과 마음으로 담다 보니 단순히 문학적 감성으로는 부족했을까? 박 시인은 “글을 쓰다 보니 절로 음이 나오고, 또 음이 나올 때 그에 맞춰 글을 쓰다 보니 시와 작사, 작곡까지 하게 돼 아마 대학도 자연스레 음대 작곡과를 간 게 아닐까”라고 회상한다.

게다가 문학과 음악을 넘나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처럼 음악을 전공한 박 시인에게도 문학은 늘 주변을 맴돌았다고 한다. 어릴 때는 독립유공자셨던 아버지가 책을 읽을 때마다 엄하게 독후감을 쓰도록 하셨고, 중학교 때는 시인인 문예 선생님과 음악 선생님 사이에서 어느 연도 끊지 못하고 작품을 써야 했으며, 음대 졸업 후 음악 교사가 되어 발령받은 학교에서는 바로 옆자리에 등단한 국어 교사가 치열하게 시 쓰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아직 식지 않은 자신의 창작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삶 안에서 음악과 문학을 양손에 살짝 움켜쥔 채 1987년 미국으로 왔단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 남의 나라에 와서조차 여전히 문학이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소박한 웃음을 띠는 시인. 박 시인은 “미국을 오니 오페라나 소나타 등 제가 원래 전공했던 서양 음악 작곡은 외국인이 더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가곡을 작곡하려고 과거에 쓴 시를 뒤적이던 차에 때마침 문인회 신인상 공모를 보게 된 거죠.” 공모 마감 일주일을 앞두고 자신의 작사 실력도 인증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응모한 세 편의 시.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만났던 그 기회가 삶에 시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시집을 안겨준 고마운 인연이라고 말한다. 특히 박 시인은 “제 시 중에 ‘세월’이라는 시가 있는데, 이 시가 지금까지 저를 열정을 품고 시를 쓰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됐다”고 전한다.



시는 시인의 삶과 생각을 드러낸 결과물이라는 일반적 관점에서 볼 때 박 시인에게도 ‘세월’은 적잖은 의미를 줄 터. 이에 대해 박 시인은 “시와 작곡, 작사를 할 수 있는 재능을 살려 ‘안젤리’라는 장례미사 전담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세상을 떠나는 이들을 많이 봐요. 그래서 살아가는 세월 동안 ‘숨을 잘 쉰다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늘 생각하게 된다”며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상 잊혀진 것, 하찮은 것, 혹은 일상에서 늘 접하게 되는 평범한 것에서 진실의 가치를 보고 느낀 것들을 세상에 풀어내며 살고자 한다”고 단단한 삶의 가치를 전한다.

박 시인은 인터뷰를 마치며 “저는 좋은 시를 읽으면 꼭 필사합니다. 시를 읽고 필사를 하면서 읽고, 필사한 시를 읽으면 모두 3번을 읽게 되거든요. 그러면 그 시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자신의 감성에 맞게 어느새 스며들어 있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써 놓은 시만 1000편이 넘는데, 지금 제게 그 시들이 다 보물이 됐죠”라며 아주 오랜 습관 하나를 귀띔한다.

궁금했다. “혹시 음악과 문학 사이에 양다리 신가요?” 박 시인은 틈도 없이 단호하게 답한다. “창작의 관점에서 보면 시와 작곡, 작사는 같지만 결국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시가 제겐 더 어려워요. 시는 평생 공부해야 할 과제 같은 거랄까요?” 시를 부르고, 노래를 짓는 박양자 시인. 문득 시인의 시를 부르고 싶어진다.
'


펼치고 오므릴 때면
호젓한 들길 같은 손금들이
서로 맞붙거나 구부러져
골진 어둠이 서리기도 한다
손가락이 만드는 작은 고랑마다
움켜쥐면 불끈한 돌이 되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부수었나
손 주먹 깊은 동굴에 모여
마음이 퍼렇게 일구는 갈래들을
가닥가닥 여며야 하는데
느슨하게 펼쳐보는 손바닥에는
드르륵 드르르르,
뜯어진 솔기 같은 하루를 곱게 박음질 하던,
그 낯설던 손 주먹 무게 만한 노동이
아직도 눈부시게 손 끝 지문조차
희미한 내력을 순하게 슬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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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솜 이불

시집올 때 장만한 목화솜 이불
한때는 귓불 간질이던 품속처럼 부드럽고 따스하더니
솜틀 집 없는 이역에서 무겁고 딱딱해졌다
찰흙덩이처럼 조금씩 굳어가는 목화솜
더는 말랑말랑한 기대 저버리고
막장 같은 어둠에 무게를 쟁여두고 있다
덜그럭덜그럭 솜 틀 때면
한숨 같은 솜먼지 풀풀 날리던 시절 있었는데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날지를 못한다
스스로 부풀리지 못하고 가만히 가라앉아
빠져나올 듯 나올 듯 짓누른
내 오랜 쓸쓸함 같은 것
그런 날은
내 벼랑 같은 세월의 내력이
실꾸리 감기듯 저며 든 이불 속에 누워
발 뒤꿈치에 걸린 실밥 몇 가닥 톡톡 끊어낸다

또 못 버리겠다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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