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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가을 단풍, 인생 단풍

김평식 / 여행 칼럼니스트
김평식 / 여행 칼럼니스트 

[LA중앙일보] 발행 2019/10/10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10/09 19:29

단풍은 남자를 상징한다. 꽃들도 좋지만 마지막 생애를 몸부림치듯 색색의 물감을 뿌려대는 단풍을 볼라치면 처절해 보이기도 하며 한 해의 대미를 마감하듯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픈 충동까지 느끼게 한다.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단풍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단풍이 절정을 이룰 때는 마치 온 세상이 이글거리는 화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녹음이 한창이던 한여름의 나뭇잎들이 생각난다. 근육질도 튼실하게 생전 변할 것 같지 않던 거무튀튀한 잎새들이 찬 서리라도 한 차례 맞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동맥경화 증상이 심해진다. 이때부터 늙어가는 연륜이 아니라 익어가는 자연의 순환이리라. 꽃이 져야 열매를 맺고 단풍이 져야 새싹이 돋는다.

이제 다음 주면 그렇게도 갈망하던 단풍을 보러 떠난다. 발 길이 가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동부 지역 단풍밭에 가 있다. 여행동호인 클럽 '반갑다 친구야'의 친구들과 함께 메인주로 13일 출발한다. 내 생애 단풍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싶으니 감회가 더 새롭다.

내가 위암 수술을 받은 지 이제 2년 반이 되었다. 위를 위아래로 100% 끊어내서 하루아침에 '밥통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수술 후엔 체중도 30파운드나 빠져서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상대가 나를 알아볼 정도다.

그동안 남다른 속앓이를 많이 했다. 오래 살기 위해 속앓이를 했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비운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오래 살기 위함보다는 내가 보고 싶은 것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보고 갈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욕망뿐이다. 미국 전역을 내 집 안마당 드나들 듯했는데도 그 중독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기 맛을 알면 빈대도 안 남아 난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 여행에서 속살이 꽉 찬 랍스터라도 한 마리 뜯어먹을 것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그것도 풍광 좋은 바닷가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곁들이면 금상첨화,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또 있겠는가.

갈 때마다 한 마리만 먹고 나왔는데 이번에는 두 마리를 주문해야지. 위가 없어 다 먹지도 못할 주제에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식탐까지 발동하다니 내 몸이 벌써 메인주 랍스터의 진가를 느끼는가 보다.

벌써 가을이 문턱에 걸려 있다. 나이 먹을수록 계절만큼 마음도 예민해지는 것 같다. 겨울이 되면 꽃도 볼 수 없고 단풍도 볼 수 없다. 그런들 어쩌겠는가.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이치가 아니던가. 피골이 상접한 내 몰골같이 앙상한 가지만 남더라도 그것이 또한 자연의 이치인 것을.

꽃도 지고 단풍도 떨어지니 모든 세상만사가 제행무상이라. 허망하고 허망하다. 그래도 꽃이나 단풍은 내년에 다시 피고 지겠지만 인생은 잠시 왔다 가는 일장춘몽. 이렇게 마음 비우고 나니 이렇게 또한 편안한 것을.

인생, 복잡하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다. 잠시 들러 잘 놀다간다 치자. 잘들 놀다 천천히 오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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