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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사투리, 문화의 유전인자

나는 사투리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한다. 잘 되지는 않지만, 배우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힘에 부치는 또랑 글광대 노릇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고, 특히 희곡을 쓰고 연극을 하면서는 더욱 사투리의 낭창낭창 흐드러지는 매력에 기대게 된다.

그래서, 우리 동네 정찬열 시인 같은 이가 남도사투리로 쓴 시들을 무척 좋아한다. 같은 마을 글동무인 김용택 시인이 표준어로 쓴 시도 물론 좋지만, 내게는 정 시인의 작품이 한결 맛깔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정찬열 시인의 시집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만날 때마다 언제 나오느냐고 채근하듯 묻곤 한다.

판소리나 남도가락 특유의 텁텁하고 짙은 맛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소리로 엄청난 슬픔을 천연덕스레 표현하는 힘은 사투리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내가 사투리를 유달리 사랑하고, 자연스럽고 맛깔나게 사투리 쓰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또 하나의 까닭은 내게는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삼팔따라지의 자식으로 부산 피난살이를 거쳐,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가난한 탓에 이루 셀 수 없이 많이 이사를 다닌 바람에 고향 없는 무향민(無鄕民)이 되고 말았다. 삶에 지쳐 고단해도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다.

어쩌다 서울에 가도, 옛 생각에 잠겨 대학로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학림다방에 들어가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고작이다. 오늘의 대학로는 눈부시게 변해버려서 내 청춘 시절의 퀴퀴한 냄새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학림다방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쓸쓸하다. 돌아갈 곳 없는 나그네의 가슴에 스산한 돌개바람이 먼지를 일으킨다.

사투리는 고향의 넉넉한 품이나 어머니 손맛 같은 기본 정서 중의 하나다. 아주 본질적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울린다. 기본정서를 다른 말로 하면 정체성이다. 그러니까, 나의 본디 모습 또는 문화적 유전인자인 셈이다. 저마다 다른 삶에서 우러난 유전인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삶이다. 그래서 말에는 사투리가 있지만, 글에는 사투리가 없는 것이다. 말은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삶의 생생한 울림이지만, 글은 책에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정서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정체성의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투리를 사랑하고 지키는 일은 곧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인 것이다. 바다 건너 저 먼 하늘 아래 고향의 어머니….

좀 엉뚱한 생각이지만, 다민족 다문화 사회인 미국 땅에서 한국어는 하나의 사투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정겨운 사투리…. 그 한글이 미국 사회에서도,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사투리를 아낀다. 요새 한국 정치판에서 마구 날아다니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험상궂은 사투리는 많이 거슬리지만, 그래도 나는 사투리를 사랑한다.

정찬열 시인의 구수한 시 한 구절 함께 읽고 싶다. '영암에서 온 편지(4)'의 한 대목이다. 고향 어머니가 보내온 글월….

"요새 내가 쪼깐 까막까막한디/ 이 노릇을 으째야쓸랑가 모르겄다// 큰아그야 내가 나이를 묵기는 묵었는갑다야 내 생일도 모르고 지내갈 뻔했다 … 그나저나 이러케 오래사는거시 숭인지 복인지 모르겄다 삭신이 쑤시고 여그저그 안 아푼디가 업다 …편지한장 쓰는디 하래가 꼬빡걸려부렀다 끗나고봉깨 저녁밥때구나// 행팬이 앵간만하먼 한번 댕게가먼 조컸다/ 낼모래 설인디 떡국이나 끌여먹은지 모르것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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