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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290>남미 독립의 영웅 산 마르띤1

볼리바르보다 다섯 살이 많은 산 마르띤(Jose Francisco de San Martin. 1778-1850)은 1778년 아르헨띠나(Argentina)의 북부 미시오네스(Misiones)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스페인 태생의 장교를 아버지로 태어났다. 마르띤이 7세 때 아버지가 스페인으로 귀국함에 따라 그는 스페인의 귀족학교에 들어가 수학했으며 거기서 칠레의 대통령이 되는 베르나르도 오이긴스와 친구가 된다. 마르띤은 11세에 군대에 들어가 22년 간 복무했으며 1808년 나폴레옹의 스페인 점령 후 왕위에 있던 까를로스 4세의 아들인 훼르난두(Fernando 1784-1833. 재위 1808-1833) 7세가 쫓겨나고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인 조세프를 황제로 즉위시키자 스페인을 떠나 아르헨띠나로 돌아와서 독립 비밀결사에 투신했다.

당시의 아르헨띠나의 상황은 어땠나.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806년 1600명의 병력을 태운 영국함대가 아르헨띠나의 라 플라타(La Plata) 항구에 나타나 순식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를 점령했다.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던 부왕인 소브레몬테 후작은 응전할 의사가 없어 가족과 함께 내륙지방으로 도망쳐버렸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거드는 바람에 미국 식민지를 잃고 어디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분풀이도 할 겸 타국의 점령지 몇 곳을 찝쩍거려서 가아나 벨리스 등 작은 식민지 몇 개를 건졌고 또 적국인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점령 중인 식민지에 대한 공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였다. 이러한 본국 지도부의 불편한 심중을 잘 아는 영국군 사령관 포팜은 부에노스를 점령한 뒤 전리품을 산더미 같이 영국으로 실어보냈다.



▶문의:(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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