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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타운] ⑦ 웨스트버리(Westbury)…300년 역사 어린 전원 타운

퀘이커 교도 정착 뒤 발전
뛰어난 경관…곳곳에 명소

웨스트버리는 나소카운티 힉스빌과 미니올라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는 300년 전 무렵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한 영국 퀘이커 교도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다. 웨스트버리 지명도 당시 한 퀘이커 교도가 살았던 영국 고향 마을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지어졌다. 롱아일랜드 퀘이커 교도들의 모임인 '소사어티 오브 프렌즈(Society of Friends)'의 첫 미팅하우스가 이곳에 지어졌다.

퀘이커 교도의 유입은 웨스트버리 흑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롱아일랜드 많은 지역에서 그렇듯이 백인 교도들이 흑인 노예들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이곳 퀘이커 교도들은 자유 정신을 중요시해 흑인 노예 154명을 해방시키며 그들이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도록 지원했다.

유니온애브뉴와 크로스스트릿 코너에 아직도 남아 있는 뉴 라이트 밥티스트(New Light Baptist) 교회도 흑인들이 세운 교회다. 지금은 백인이 웨스트버리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지만 18세기 후반만 해도 기차역 주변 상점들은 대부분 흑인들 소유였다.



웨스트버리는 18세기 후반 롱아일랜드레일로드(LIRR)가 들어서면서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들이 함께 사는 마을로 변했다. 또 이 때 부동산 부자들이 본격적으로 마을에 정착했다. 웨스트버리 북쪽 올드 웨스트버리 일대에 대저택들이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특히 포스트애브뉴 일대는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다.

한편 19세기 초반 이 지역 유력인사였던 존 필립스의 저택을 포함하고 있는 올드 웨스트버리 정원은 국가 유적지로 등록돼 전원 생활을 체험하기 위한 주민들의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웨스트버리 주민 중 1400명이 전쟁에 나갔다. 이는 전체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시 미 전국 타운 중에서 주민 대 참전자 비율에서 가장 높았다.

1960년대 웨스트버리 곳곳에 건물이 지어지면서 다시 인구는 늘었다. 당시 인구는 1만4000여 명으로 지금의 3배에 달할 정도였다.

최근 웨스트버리에는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 인구의 유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 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아시안 인구는 전체의 6%에 달한다. 나소카운티 다른 지역과 달리 히스패닉이 백인 다음으로 많고 아시안이 그 다음을 잇는다.

반면 올드 웨스트버리에는 아시안 인구가 17%에 가까워 백인 다음으로 많다. 올드 웨스트버리는 교육수준도 높아 80%가 4년제 대학 이상의 학위 소유자로 의료와 보험 교육 등 분야에서 일하는 있는 주민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웨스트버리는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마을로 알려져 결혼식 등의 행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리셉션 장으로는 웨스트버리 매노르(Westbury Manor)가 유명하다.

이조은 기자

lee.joe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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