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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현(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모란꽃을 기다리며

지난 봄 모란나무를 심었다. 나무시장에 들어서니 입구에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품고 있는 녀석에게 한눈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시장 이곳저곳을 다 둘러보아도 첫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집 앞마당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사를 한 집에서 제대로 꽃을 피울까 하던 내 염려를 물리치고, 우아한 모습으로 꽃을 피워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과연 꽃들의 왕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다른 꽃들과 비교도 안 되는 품위와 위엄이 있는 꽃이었다. 비록 한 송이었지만 무리지어 피어있는 다른 꽃들에게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화려함이 있었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눈이 호강을 했다.


문제는 가을부터였다. 꽃이 지고 나서 나무 잎들이 병이 든 것처럼 색이 변하더니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무가 이상하지 않느냐고 염려하는 남편에게는 낙엽이 되어 잎이 떨어지는 것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잎뿐만이 아니었다. 가지도 끝부터 마르기 시작하더니 힘없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보니 가운데 줄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남편은 나무가 죽은 것 같다고 뽑아 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일 년도 되지 않아 멀쩡하던 나무가 죽은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보기엔 정말 죽은 것 같이 보였다. 나무를 사온 곳에 나무의 사진을 찍어 상태를 알아본 남편은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단다. 원래 겨울엔 그렇게 지낸단다. 무슨 나무가 동면을 하는 것 같이 지내냐고 아이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아이가, 나무를 잘 살펴보더니 나무가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고 신기해했다. 죽은 것같이 보이던 가지에서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신기해서 세어보니 8개의 싹이 그 마른가지에 붙어 있었다.

지나가는 이의 시선을 모으던 그 화려했던 꽃도, 벌레 먹었던 나무 잎도 다 떨어내고 모두 다 새롭게 시작하고 있었다. 지나간 것에 대하여 아무 미련 없이 작은 것 하나도 남기지 않고 더 내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기쁨의 날도 또 눈물을 흘리던 날도 있었다. 행복해 하던 순간도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지나간 시간 속 에 들어있다. 나무는 지나간 것은 돌아보지 말라고, 모두 다 내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 끝난 것 같아 죽은 것 같이 보이는 것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다. 내일을 준비하며 새 생명을 품고 있는 나무에게서 소망을 배운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화로 불리었다. 그와 같은 상징성에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도 모란꽃이 수놓아졌고, 선비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상징하는 모란꽃이 그려졌다. 또 가정집의 수 병풍 에도 모란이 들어가 있었다.

지나간 것은 깨끗이 정리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에는, 모란처럼 여러 가지로 풍성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풍성하고 관계도 풍성하며 살림살이도 풍성해지기를 소망해본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모란나무의 새싹이 튼실해 보인다.죽은 것 같은 나무에서 작년보다 더 풍성한 모란꽃을 기다리고 있다. 모란꽃처럼 새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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