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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알마와 구스타브 말러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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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입력 2018/02/20 09:55

1901년 40세가 된 노총각 구스타브 말러는 19년이나 연하인 알마 마리아 쉰들러(1879-1964)란 젊은 여인을 만나 그 자리에서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제대로 교육을 받았고 아름답고 섬세했으며 십대에 이미 17개의 가곡을 작곡한 기성 음악가였다.

아버지는 주로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였는데 풍요한 가운데서 자랐다. 천성적인 사교가여서 비엔나에서 그녀의 집은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작곡가 젬린스키와 화가 클림트도 있었다. 그녀가 첫 번으로 키스한 사람이 클림트였다는데 훗날 그가 그려 유명해진 ‘키스’란 그림에서 황금색 로브에 싸여 다소곳이 눈을 감고 키스를 받아들이는 모습의 젊은 여인 모델이 그녀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1892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남편의 제자였던 화가 칼 몰과 재혼했다.

당시 말러는 비엔나 궁정 오페라의 지휘자였다. 수도 지역에서 많은 작가나 화가들과의 교류를 넓히며 신분 상승을 꽤해 클림트와 몰이 주도하는 ‘비엔나 분리파’ 모임에 참석했다. 그해 겨울 모임이 열린 몰의 집에 갔을 때 몰의 의악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딸 둘을 낳고 안정되게 살았다. 큰 딸 마리아 안나는 디프테리아로 1907년 어린 나이로 사망했고 둘째는 후에 조각가가 되었다. 딸을 잃고 깊은 시름에 빠진데다가 남편은 초인적인 스케줄로 연주여행에 바쁘게 되자 1910년 알마는 두 달간 오스트리아의 토벨바드란 온천에 휴양을 갔다. 거기서 그녀는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란 전도유망한 연하의 건축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 그는 여자 경험이 없는 27세의 청년으로 무르익은 31세의 알마를 보자 반하고 말았다. 그들은 밤새도록 이야기하다가 한 몸이 되었다.

당시 말러는 10번 교향곡을 구상하기 위해 티롤 지방에 머물러 있었다. 부인의 부정은 전혀 모르고 그녀의 우울증에 대해서만 걱정했다. 그녀로부터 오는 편지가 차차 줄었다. 50세 생일을 축하하는 생일카드조차 오지 않았다.

알마가 집으로 돌아온 후 그로피우스는 그녀에게 함께 도망치자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실수였는지 그는 편지를 ‘구스타브 말러 씨’ 앞으로 보냈다. 말러는 삼자대담을 요구했으며 알마에게 제발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호소했다.

말러에게 발기부전이 생겼다. 부인에 대한 성욕이 사라진 것이다. 친구들은 당시 정신분석가로 떠오르던 프로이드 박사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프로이드는 자신이 휴양 중이던 네덜란드 레이덴에서 만나주었다. 그들은 4시간에 걸쳐 거리를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이드는 말러가 결혼생활에서 크게 고통을 받던 어머니를 이상화하면서 성모 마리아같이 존경하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말러에게 왜 그런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알마의 중간 이름이 마리아였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알마가 사랑하던 아버지는 화가였는데 Maler는 독일어에서 화가를 의미했다. 프로이드는 말러에게 발기부전의 심리적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말러는 우울증에서 벗어났으며 발기부전도 해소되었다.

부인에 대한 말러의 태도도 바뀌었다. 그녀에게 작곡을 격려해 주었으며 멜로디에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여주었다. 그의 지도로 작품 5개도 출판했다. 부부 관계도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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