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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권익옹호 힘쓰고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와이드 인터뷰 황석영씨


제26회 국제작가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토론토를 방문한 소설가 황석영(63)씨는 한국의 대표적 진보작가로 꼽히지만 현 정부의 몇몇 정책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다. 그는 특히 홍석현 전 주미대사의 중도낙마 문제에 대해 “분명 잘못된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블루어 한인타운 인근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황씨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와 한국의 정치상황 등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그는 황‘구라’(입담이 세고 걸쭉하다는 뜻의 일본어 속어)라는 별명답게 거침없는 언변으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토론토 방문은 처음인가.
▲그렇지 않다. 지난 90년대에도 왔었다. 당시 전충림씨 등과 호형호제하며 교분을 나눴다.



-전 주미대사 홍석현씨와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홍씨가 주미대사에 발탁될 수 있도록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여러분들이 청와대측에 협조를 당부했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인재를 키울 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지 깎아 내리려고 한다. 그러면 안 된다. 그처럼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을 왜 낙마시키나. 홍대사는 미국 각계에 두루 발이 넓고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스탠포드대학 동창이다. 머리와 자금력을 두루 갖춘 그를 잘 활용하면 유엔사무총장까지 될 수도 있었다. 나도 그런 작업을 지원해왔는데 아쉽다. 현 정부에는 인재등용을 가로막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

-현재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는 어떤 소설인가.
▲나의 자전적 소설로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실명이다. 4.19혁명 등 격동의 세월을 겪어오면서 체험한 기억들을 한데 모아 엮은 것이다. 이곳에서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신다니 반갑다.

-노벨문학상 최종 후보자로 올랐었는데.
▲나를 비롯해 4명이 올랐었다. 그러나 노벨상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는 재고해봐야 한다. 노벨상에는 3대 ‘도그마’가 있다. 먼저 작가의 창작의 자유를 제한한다. 수상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게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간 수상경쟁을 벌이게 하며 수상자는 무사안일에 빠져 추후 좋은 작품이 나오질 않는다. 미리 얘기할 것은 아니지만 노벨상을 주더라도 거절할까 생각중이다.(웃음)

-황 선생의 라이벌로 인식되는 이문열씨가 정치적 행동을 많이 하는데.
▲이문열씨가 한때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으니까 열린우리당에서는 날보고 그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었으나 고사했다. 작가가 왜 정치에 끼여드나. 그리고 이씨는 신문에 정치칼럼을 많이 쓰지만 작가는 문학작품을 써야지 그런 것을 쓰면 안 된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유난히 맘에 드는 것이 있는가.
▲나의 초기 작품 ‘객지’와 ‘삼포 가는 길’ 등이 있다. 그러나 나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하 연재소설 ‘장길산’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나 또한 이 작품에 애정이 많이 간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러면서 안정된 작품을 쓸 수 있는가. 또한 가정적으로도 다소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두 번이나 이혼하고 북한을 방문한 뒤 감옥생활을 하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요즘엔 매우 안정돼있다. 현재 사는 아내는 충청도 출신의 아주 평범한 여자다.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미국에 사는 전처는 나를 아주 피곤하게 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옥바라지도 하지 않은 여자가 무슨 재산분할 요구를 하는 등...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아들딸들은 모두 장성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 나는 영원한 청년작가다. 언제나 왕성하게 쓰고 있다. 지금은 한국의 전통무속설화를 배경으로 한 ‘바리공주’라는 작품을 쓰고 있다.

-북한은 몇 번이나 다녀왔나.
▲대여섯 차례 갔다왔으며 체류기간은 모두 합해 총 6개월 정도 되는 것 같다. 북한주민의 생활상은 여전히 비참하다. 남한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세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과연 그런가.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가 많지만 나는 일치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한국엔 당분간 가고싶지 않다. 지겹다. 이제는 미국 뉴욕으로 갈 것이며 나중에는 영국에서 작품을 쓸 것이다. 지금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작품의 소재와 자료를 구할 수 있다. 다만 맘에 드는 영문번역가가 없어 아쉽다.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뜻맞는 영문번역가가 있으면 좋겠다.

-조국을 떠나온 이민자들에게 한마디.
▲이민자는 현지에 뿌리내리고 사는 게 중요하다. 조국의 정치문제에 너무 관심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민자들은 스스로의 권익옹호에 힘써야 한다. 서로 힘을 합쳐 도와줘야 한다. 또한 2세들에게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물려주고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동포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신용조합 같은 것을 만들어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욕구도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나는 독일망명생활 등을 하면서 이 같은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용우 기자 joseph@joongangcan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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