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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중 '기관총 복제' 실패, 왜?

[과학의향기] 2차 대전 중 기관총 복제 시도 … ㎝ → 인치 안 해 실패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MG42라는 기관총으로 연합군 전사자의 절반을 희생시켰다. 이에 미국은 이 기관총을 복제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오발과 미작동의 연속으로 결국 기관총 복제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갔다. 왜 실패했을까. 바로 도량형의 혼선에서 비롯됐다.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도량형인 '미터법'이 등장한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정부가 "미래에도 변치 않을 도량형 기준을 만들자"는 목표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과제를 주면서부터다.

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은 이듬해 적도에서 북극까지의 같은 경도상 거리(또는 자오선)를 구한 뒤 그 거리의 1000만분의 1을 '1m'로 정의했다. 또한 1000㎤의 부피를 '1ℓ'라 했으며, 무게단위 1㎏은 섭씨 4도에서 물 1ℓ의 질량으로 정했다.



이후 측정 기술 발달과 함께 단위의 정의를 바꿔나갔다. 1㎏은 물의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제도량위원회는 1889년 21.5g/㎤인 백금(90%)과 이리듐(10%)의 합금을 재료로, 지름과 높이가 각각 39㎜인 1㎏짜리 실린더 모양의 국제 원기(표준기)를 만들어 1㎏의 기준으로 삼았다. 1m 역시 수차례 수정을 거쳐 1983년 "1m는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라고 새로 정의했다.

미터법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1215년 '대헌장'에서 규정한 피트와 온스 등을 현재까지 주요 척도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독일제 기관총을 복제하면서 ㎝를 영국식 단위인 '인치'로 환산하지 않았거나 혼용해 결국 실패를 맛봤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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