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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배우며] 소나무

쭉쭉 뻗은 미끈한 줄기의 키가 큰 소나무들이 집 주변, 길 가, 공원에 서서, 은퇴하고 이곳으로 이사 온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친숙했던 소나무들이 이제 가까운 내 주변에서 끊겼던 우정을 다시 이어간다.

소나무 장작, 솔 갈비, 솔방울, 삭정이로 불을 지폈다. 집 기둥, 서까래, 대들보, 마루, 송판 울타리도 소나무였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절개가 굳으라고 여자 아기가 출생하면 금 줄에 솔가지를 달았다.

솔잎을 넣고 찐 송편, 송홧가루 다식은 귀한 음식이고, 보릿고개 때 송기는 구황 식품이었다. 봄의 소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면 물이 흐르는 연한 소나무의 새살, 나이테로 굳기 전 연한 살을 입으로 훑으면 달콤하던 송기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식목일에 심던 소나무 묘목, 송충이 잡던 기억도 생각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이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많이 불렀던 애국가의 한 소절.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 고하니 / 봉래산 제일 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 솔아 너는 어찌 눈 서리를 모르는가/ 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아노라.”

이 시조들을 우리 세대는 다 외었다. 많은 소나무 주제의 시조와 시, 노래와 함께 살았다.

공원 숲속을 걷다가 그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소나무의 곧은줄기가 아득한 한 초점으로 삼각형을 만들며 치솟고, 꼭짓점에는 솔잎 틈새로 조각난 하늘이 밤하늘에 별들 같이 빛난다.

송홧가루 날리는 철이면 하늘은 송홧가루로 노랗고, 주차장의 차들은 송홧가루로 누렇게 덮이는 일에 이제는 익숙하다. 11월의 어느 날, 골프장에서 소나무에서 떨어져 날리는 솔 씨들이 싸락눈 내리듯이 퍼부어, 잔디 위에 눈처럼 떨어진 수많은 솔 씨도 보았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사회생활마저 금지되어 아내와 공원을 많이 걸으니, 소나무들을 많이 본다. 솔 씨에서 싹이 트는 모습,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자라난 잔솔들, 큰 소나무 아래서 죽어가는 가느다란 소나무들도 본다.

“저 소나무들은 어떻게 곁가지가 없이 전봇대처럼 매끈하게 자랄 수 있어? 별종인가 봐!” 그런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공원 길을 걸으며 잔솔밭에 촘촘한 소나무들의 옆 가지들은 햇빛을 못 받아 말라 죽고, 몇 년 사이에 새 나이테가 곁가지자리를 덮어 미끈한 줄기만 보이기도 한다.

“큰 소나무 그늘 밑에 사는 작은 소나무들을 봐. 햇빛이 그들의 생명인데, 햇빛은 큰 나무에 가리고, 그늘의 작은 나무들은 목을 빼고 죽는 모습, 큰 것들만 생존하는 불공평, 죽어야 하는 작은 것들은 억울해!”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 속에 아픔과 어둠이 느껴진다.

요즘 숲을 자주 걸으며, 큰 나무 그늘에 사는 작은 나무에 대한 바뀐 생각을 “그늘에서 사는 나무들”에서 썼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나무도 다른 나무나 풀들과 함께 지구라는 초록 별 속에서, 태양 에너지를 생물들 먹이로 바꾸어 생물들이 필요할 때 쓰도록 하려는 큰 그림 속에서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가려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그늘의 작은 나무들도 죽도록 협력한다.

달과 화성에도 해는 뜨지만, 소나무나 식물이 살 수 없어 생물의 먹이 사슬이 생기지 못한다. 소나무는 씨들을 많이 만들어 그늘과 양지에 뿌리고, 비록 그늘에서도 어린나무들이 작은 양의 빛이라도 이용하여 먹이로 바꾸고, 뿌리로는 토사를 막고, 죽어서도 거름이 되어 토양을 비옥하게 하여, 큰 나무들이 더 무성하도록 돕는다. 녹색 지구를 만드는데 그늘의 작은 소나무들도 협력하고 헌신한다.

몇 년 전 맥다니엘 공원 잡초 덮인 빈터에 친구가 준 돼지감자를 먹지 않고 심었다. 싹이 트고 해바라기 닮은 노란 돼지감자 꽃이 피면, 충청도 산골 보릿고개 때 캐 먹던돼지감자의 기억이, 노란 돼지감자 꽃을 볼 때마다 감사로 이어지길 소망했다. 돼지감자를 심은 빈터는 지금 내 키보다 크게 자란 소나무들로 빼곡한 잔솔밭으로 변해, 공터의 잡풀과 돼지감자는 사라졌다. 소나무는 열성으로 빈터를 찾아 잔솔밭을 만들고 세월 따라 잔솔밭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변한다.

골프장 소나무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올려다본 키가 큰 소나무 가지들이 초여름 들 바람에 춤을 추며 솔바람 소리로 속삭인다. 불공평하고 잔인해 보이던 경쟁도, 공동의 큰 뜻을 위한 헌신과 협력이라오, 쉬이 쉬이 쉬이. 산다는 것은 아름다워요. 쉬이 쉬이 쉬이.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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