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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하나, 둘, 셋… ‘셈하는 인간’

“하나, 둘, 셋….” 어릴 때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셈’을 배웠다. 그때부터 숫자는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을 가두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숫자로 불리기 시작할 때 낭만도 추상도 틀에 갇히고 말았다. 세상은 그 숫자만큼 얻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돈을 주고받아야 하는지를 진작에 알려주었다. 그러는 사이 사람은 평생 숫자를 세며 사는 ‘호모 칼쿨루스(Homo Calculus)’가 되었다.

‘호모 칼쿨루스’는 ‘셈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인간은 평생 무엇인가를 세며 산다. 어려서는 성적과 등수를 세고, 한창때는 돈을 세고, 주식이 오르고 내림을 세고, 집 크기를 세고, 자동차의 엔진 배기량을 세며 행복을 좇았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하루 매상을 세고, 어김없이 날아오는 렌트비며 공과금 고지서, 갚아야 할 융자금을 세며 이민 생활을 이어간다. 요즘은 코로나19 확진자의 수를 세고, 사망자의 수를 세며 두려워하기도 하고 마음을 놓기도 한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것을 세면서 살았는가? 아카시아 잎사귀를 세고, 날아가는 철새를 세고, 밤하늘에 뜬 별을 세던 낭만은 어디로 가고, 조금 더 행복하자고 내 손에 거머쥔 것들을 세고 또 센단 말인가?



시인 김태준은 ‘감꽃’이라는 시를 통해 낭만을 잃고 숫자가 통제하는 세상을 사는 ‘호모 칼쿨루스’들에게 지금 무엇을 세냐고 묻는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이 짧은 시에는 한 인생이 성장해 온 이야기가 담겨 있는 동시에 우리 민족이 지나온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적한 농경시대를 살던 우리 민족은 한국 전쟁이라는 쓰라린 비극을 지나야 했다.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엄지에 침 발라 억척스럽게 돈 세는 모습이 마치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져 안쓰럽기만 하다.

시인의 마지막 질문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이 질문이 무거운 이유는 지금 세는 것을 먼 훗날에도 세고 있으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조금 더 멋지고 낭만적인 것을 세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 꾸던 꿈을 다시 세고, 평생 살면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이들의 얼굴을 세고, 이민 와서 고생은 했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고마운 마음으로 세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눈앞에 보이는 것, 당장 손에 잡히는 것, 셀 수 있는 것만 세라고 부추긴다. 고작 그런 것 조금 더 많이 세려고 이민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낭만과 추억을 셀 때다. 어릴 적 꿈도, 이민 올 때 품었던 웅지도 다시 세다 보면 인생의 아름다움을 ‘셈하는 인간’으로 남지 않겠는가.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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