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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역사 박물관의 '품격'

정구현/사회부 부장
정구현/사회부 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6/07/29 미주판 10면 기사입력 2016/07/28 21:51

격식을 갖춰야 하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넥타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양복 상의 정도는 입고 갔어야 했다. 행사장에 온 250여 명의 손님 대부분이 양복과 드레스 차림이었으니 '아무리 기자라도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도 했다.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했던 곳은 지난 21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윌셔 호텔에서 열린 한미박물관 기금모금 만찬 행사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자리였다. 한미박물관 측이 지난해 건축 디자인을 발표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 개최한 첫 공개 행사였다. 게다가 로데오 드라이브 명품 거리 맞은 편에 있는 5성급 최고급 호텔에 면바지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갔으니 지각없다는 말이 맞다.

참석한 손님들은 다들 만찬 행사에 익숙한 듯했다. 옷차림은 물론이고 본 행사 전 리셉션에서 핑거푸드와 샴페인 와인으로 가볍게 요기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에서 격이 느껴졌다. 주요 연설자들의 면면에서도 공을 들인 흔적이 보였다. 성 김 주 필리핀 미국대사 내정자 30년간 LA한인타운 지역구 시의원을 지내고 있는 허브 웨슨 시의장 최초의 한인 시의원 데이비드 류 홍명기 밝은미래재단 이사장 등이 연단이 올랐다. 식사는 1인당 250달러까지 하는 코스 요리였고 마지막 순서로 대한민국 대표 록밴드로 불리는 윤도현 밴드의 공연까지 준비됐다.

이만하면 행사는 짜임새 있다고 불릴 만했다. 그런데 그 좋은 자리에 앉아있는 내내 위화감을 떨칠 수 없었다. 물론 옷차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응당 있어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광복회 3.1 여성동지회 등 한인들의 역사를 지켜온 '그들'이 없었다.

특히 대한인국민회는 1909년 도산 안창호를 중심으로 조직된 미주 항일독립운동의 중추기관이다. 뿐만 아니라 초기 이민자들의 권익과 옹호를 대변했던 미주 이민사의 축이기도 하다. 더욱이 국민회가 처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날 행사장에 반드시 초청되어야 했다. 현재 국민회 유물들은 보존할 수장고가 없어서 곧 한국의 독립기념관으로 이관된다. 만약 이날 행사의 목표 중 하나가 박물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국민회 관계자들이야말로 그 입장을 호소할 수 있는 적임자였다.

부재자들은 더 있다. 올해는 1991년 한미박물관이 태동한 지 25주년 되는 해다. 그 긴 세월 동안 한미박물관에 애정을 쏟아온 전직 박물관장들도 찾을 수 없었다. 수많은 부침 속에서도 박물관의 명맥을 이어온 누구보다 박수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둘러보니 빠진 자리는 더 눈에 들어왔다. 그 많은 기자들도 행사장에 보이질 않았다. 미주 한인사회 최초의 박물관이 본격적인 기지개를 펴는 날이다. 보도가치가 충분한 자리에 고작 2개 신문사 1개 라디오 방송사 기자만 참석했다.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 보도자료 한 장 전화 한 통화 받지 못했다. 옷차림이 '수수'할 수밖에 없었던 변명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250명 VIP 참석자들에 집중하느라 수백만 한인들의 동참 호소에 소홀했다.

역사 지킴이를 홀대하고 홍보에 미약했던 것은 박물관측의 실수였다고 믿고 싶다. 만약 실수가 아니라면 애초부터 '그들만의 잔치'를 기획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금모금 행사이니 지갑을 연 사람과 앞으로 열 사람을 중심으로 초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박물관이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명분은 따로 있다. 이날 행사장에서 실종된 역사 의식과 존재 이유다.

격식의 정의는 '격에 맞는 일정한 방식'이다. 품격 예의 품위와 비슷한 말이다. 박물관의 품격은 왜 누구를 위해 필요하고 무엇을 담을 것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다. 그래서 이날 행사는 아쉽고 또 아쉽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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