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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노포 식당' 어머니의 눈물

신문 1면에는 가장 중요한 기사를 싣는다. 예를 들면 지진, 홍수 같은 자연재해와 전쟁 등 국가적 위기, 집권층의 비리, 국가간 스포츠 경기들이다. 초등학생도 알 만한 상식이다.

얼마 전 본지 1면에 보도된 기사가 이 '상식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말이 많았다. 문제의 기사는 LA한인타운내 전원식당의 사연을 다뤘다. 22년간 한자리에서 2대째 영업해온 대표 맛집은 입주했던 건물이 재개발되는 바람에 지난 4월 짐을 싸야했다.

정든 곳이었지만 문제는 이사가 아니었다. 22년 전 맺은 계약서에 '재개발시 보상 없이 퇴거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래서 돈 한푼 못 받고 맨몸으로 나와야 했다. 그 이후 겪어야 했던 과정들도 순탄치 않았다. 가게 터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그나마 있는 자리는 임대료가 비쌌다. 우여곡절 끝에 새 장소를 찾아 5개월 만인 지난 16일 다시 문을 열었다. 그동안 전원식당 전용원(42) 사장이 내쉰 한숨을 글로 적었다.

그 기사에 대한 지적은 이렇다. '건물주는 규정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 '건물주도 건물 가치를 올려야 한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최대한 편의를 봐줬다' '식당 한자리에서 22년 했으면 많이 했다' '발품 팔아서 다른 장소 알아봤어야 했다'….



일리 있는 말들이다. 건물주도 땅파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닌 이상 돈을 벌어야 한다. 또, 식당을 한자리에서 20년 넘게 했으니 어떻게 보면 행복에 겨운 불만일 수도 있겠다.

항상 기사를 쓰고 나서 후회하지만 이번에도 후회가 크다. 논리적으로 읽는 이를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전원식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전 사장들'이 같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인타운뿐만 아니라 LA전역에서 재개발이 한창이다. 오래된 건물을 헐고 높게, 넓게 짓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큰 그림에서 보면 개발 프로젝트는 타운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돈이 모이게 한다. 도시 미관도 정돈돼 보기에도 한결 좋다.

그런데 그 개발 효과는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적용되진 않는다. 특히 서민의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액의 개발 투자금은 극히 일부의 가진자들 사이에서만 오간다. 그 돈이 불어나는 동안 서민층의 부담도 불어난다. '재개발→임대료 인상→제품 가격 인상→가계부 적자'의 단순한 공식이다.

전원식당에 대입해보면 더 알기 쉽다. 전원식당이 문을 닫은 자리에는 새 건물이 들어설 것이고, 개발회사는 렌트비를 올릴 것이며, 새로 입주한 식당 업주는 인상된 렌트비를 감당하려면 가격을 올려야 한다. 사정이 이렇지만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음식 값 1달러를 올린 식당 업주를 욕하게 마련이다. 건물주에게도, 손님에게도 '을'이 된 생업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원칙이 그러한데 건물주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개발의 그늘 아래서 '싸고 맛있는 집'이나 '대를 이은 집(노포 식당)'은 존속하기 쉽지 않다.

새 장소로 옮겨 다시 문을 연 전원식당을 찾아갔다. 특유의 노란색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 사장에게 식당을 물려줬던 어머니 전정예(69)씨가 다시 식당 주방을 거들고 있었다. 전씨는 기사 덕분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단골손님들이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줬다. 2011년 식당을 기사화했던 LA타임스도 다시 방문하겠다고 했단다.

전씨는 이번 일로 삶을 돌아봤다고 했다. 무일푼으로 이민와서 타운내 사우나 구내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쓰러져가는 점포를 얻었고 지금의 전원식당을 만든 과정을 말했다. 일흔을 앞둔 전씨는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재개발도 중요하지만 밥집 사장의 이야기도 소중하다. 신문 1면에 가장 중요한 기사를 싣는 이유다.


정구현 사회부 부장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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