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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하와이 미사일 소동과 최소한의 신뢰

#1.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9월 26일 모스크바 외곽 비밀 군사기지의 핵무기 관제센터에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미국이 소련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는 내용의 경보였다.

관제센터 당직자였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떨렸지만 신중하게 경보 내용을 검토한 뒤 상부에 "경보 시스템이 오작동한 것이 틀림없다"고 보고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련의 인공위성이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미사일의 섬광으로 오인해 경보를 울린 것이었다.



#2. 쿠바 미사일 위기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치열한 기 싸움 끝에 1962년 10월 28일 쿠바와 터키의 미사일 기지 상호 철수에 합의함에 따라 해소됐다.



훗날 기밀 해제된 문건에 따르면 쿠바 위기가 종식되기 불과 하루 전인 10월 27일 또 한 번의 핵전쟁 위기 상황이 벌어졌다.

쿠바해협에 도착한 소련 잠수함 B-59호가 해상 봉쇄에 나선 미 해군 구축함의 폭뢰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폭뢰로 심한 손상을 입은 B-59호 함장은 탑재된 핵 어뢰 조립을 지시했고 최종 발사 승인을 위해 핵무기 통제장교 3명이 모여 갑론을박을 벌였다. 두 장교가 발사를 승인했지만 나머지 한 명의 장교가 승인을 거부한 덕분에 핵 어뢰 발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B-59호는 너무 깊이 잠수한 탓에 미군의 해상 봉쇄 방송을 듣지 못했고 소련과도 사흘간이나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훗날 미군 관계자들은 당시 핵 어뢰가 발사됐다면 소련과의 전면 핵전쟁으로 비화됐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술회했다.

최근 하와이에서 발생한 ICBM 경보 오작동은 엄청난 패닉과 상당한 후폭풍을 일으켰다.

ICBM이 날아온다는 것은 곧 미사일에 핵탄두가 달려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툴시 캐버드 연방하원의원(민주)은 "과거 의도치 않게 핵전쟁 직전까지 몰렸던 상황은 오작동 경보와 같은 실수들에 의한 것이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전제조건 없이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0년 이후 2013년까지 미 국방부가 잘못된 '핵 경보'로 인정한 사례만 30건이 넘는다. 이처럼 많은 실수가 벌어졌는데 왜 의도치 않은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소련(현재는 러시아)이 일단 핵전쟁이 벌어지면 서로의 영토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 정도의 핵전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설적 효과는 공멸이 뻔한데도 핵 버튼을 누를 만큼 상대국이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에서 비롯된다. 잦은 실수와 오작동이 가져온 일종의 면역 효과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과거 사례로 볼 때, 경보가 울려도 결국 실수나 오작동으로 판명될 거란 인식이 오판 방지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반면, 상대가 상식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깊어지면 실수나 오작동에 따른 핵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대가 극단적 선택만은 피할 것이란 믿음이 사라진 자리를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주장이 메우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당사국들 간 신뢰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믿지 못한다. 패닉에 빠진 하와이 주민 중 상당수는 미사일을 쏜 나라로 북한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한반도에 해빙 무드가 일고 있다. 하와이를 뒤집어 놓았던 '경보 오작동'과 동계올림픽이 북핵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

과거 대치가 극에 달한 뒤 평화가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경우도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많은 실수에도 인류가 핵전쟁의 참화를 피했던 사례들이 주는 교훈이다.


임상환 / OC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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