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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슬픔을 견디는 당신에게

당신은 아시나요? 찬란한 오월의 봄날에 왜 눈발이 내리는 지. 차가운 바람 속에 하얀 눈이 천지를 휘몰아칩니다. 봄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봄이 아니였던가요? 지난 겨울은 정말 끔찍이 추웠습니다. 설국처럼 눈 덮힌 혹한의 겨울을 봄을 기다리는 소망 하나로 버텼습니다. 죽은듯 몰골이 앙상하게 비틀어진 나무들이 생명을 되살릴 수 없을것 같아 두려웠어요. 죽음이 두려운게 아니라 살아버티는 일이 힘겹고 두려웠습니다.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다고해요. 마지막까지 모질게 살아남은 것들은 봄의 목소리에 생명의 기운을 힘겹게 땅속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아! 차갑고 얼어붙은 대지를 가르고 여린 손 내미는 생명 있는 것들의 합창. 삭풍에 뼈 마디 마디 마다 절망을 삭히던 나무들도 마른 손 내밀며 봄 햇살을 반겼습니다. 정원 모퉁이에서 제일 먼저 목을 내민 건 수선화와 튤립이였어요.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팝나무와 복숭아꽃, 겹벚꽃 들이 목마른 가지에 핑크빛과 살색, 하얀 꽃들을 앙증맞게 조롱조롱 피워올렸어요. 능수벚꽃은 다닥다닥 살을 맞대고 지축으로 길고 가는 손을 흔들며 손짓 합니다. 사랑이 저만치서 소리없이 지나치더라도 기다림의 끈을 놓치말라 합니다. 기다림은 애틋하지만 오래 걸려도 괜찮다고, 기다림은 희망으로 남는다고 말합니다.

중서부 겨울은 모질고 봄은 예측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라가락 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이젠 달력에 적힌 24절기와 계절, 일기예보도 믿을 게 못 됩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 봄비 내리고 싹 트는 우수(雨水), 개구리가 겨울 잠에서 깨는 경칩(驚蟄), 낮이 길어지는 춘분(春分), 봄 농사 시작하는 청명 (淸明), 농삿비 내리는 곡우(穀雨), 여름의 문턱인 입하(穀雨)를 지난 때에 휘몰아치는 봄 눈은 무엇을 의미 하는지요. 애타게 기다리던 탓에 며칠 반짝 쏟아지는 햇살에 봄이라 착각 했나요. 정말로 힘들 땐 절망과 고통이 끝났다고 믿는 착각이 시련을 견디는 약이 되기도 합니다. 계절의 뚜껑을 열고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렸다고요.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버티가 힘든 사람들은 샴페인 따기도 힘듭니다. 무탈하게 하루하루 사는 것도 기적이지요. 잘 될성 싶어 콧노래 부르다 뺨 맞고, 튼튼대로라 믿고 달리다 펑크 나고, 벌건 대낮에 헛다리 짚은 적이 한 두 번인가요. 그러니 계절이 장난쳐도 이젠 슬퍼하지도 열 받지도 마세요.



오월에 내리는 눈은 눈물 입니다. 하늘까지 닿은 슬픔이 작은 알갱이로 얼어붙어 무성한 꽃잎으로 내리는 거지요. 서로 부등켜 안고 시나브로 흔들리며 내립니다. 작별이 두려워 하늘가를 맴돌며 나무 가지를 애무하고 그대 창가를 기웃거립니다. 당신은 흔들리지 마세요. 상처난 몸 부비며 봄 눈이 당신 곁을 서성여도 슬퍼하지 마세요. 그리고 울지도 말아요. 봄 눈은 땅에 닫는 순간 녹아지고 밟혀져서 다시 눈물이 됩니다. 땅에 두 발 딛고 사는 걸 두려워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아프지 말고 죽지도 말아요. 살 부비고 흔들리며 녹아 내리는 것이 봄 눈 뿐이 겠어요. 사랑을 만나면 서성이지 말고 다가가세요. 슬픔이 목 까지 차올라도 꺼억꺼억 울지말고 죽는 것이 사는 것 만큼 두렵고 떨려도 그냥 버티고 사셔야 합니다.

아침에 눈 뜨니 휘몰아치던 미친 봄의 흔적은 간 곳 없고 목련이 꽃봉오리를 피워 올렸습니다. 녹고 얼어붙고, 다시 녹아지는 계절 처럼 사는 것이 가슴 아픈 반복으로 발목 잡아도 당신의 봄이 슬픔을 견디는 희망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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