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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IB는 강남서 1주일 200만원이라는 데"…한국어 IB 도입 전 학부모 불안

박형수
박형수 기자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7/23 17:43

충남·제주교육청 "공교육 IB로" 한 목소리
교육부·여당에서도 IB 관련 정책 연구

일선 학교에선 "섣불리 도입 마라" 반감만
사교육, TF팀 만들고 스터디·수업방식 논의
학부모 "학교 준비 안해. 사교육 의지할 수밖에"

기말고사를 일주일 앞둔 지난달 25일, 경기외고(경기도 의왕시) 과학실에는 10여명의 고3 학생이 화학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학생마다 실험 재료와 기구도 달랐다. 한 여학생은 김과 미역에서 철분을 추출하고 있었고, 다른 남학생은 토마토 구운 것과 날 것 속에 포함된 비타민C 함량을 각각 측정해 비교했다. 학생 10명의 실험 주제와 방법은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김나라 교사는 학생들의 실험 과정을 찬찬히 지켜볼 뿐, 개입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실험 결과가 이상하다”며 조언을 구하면, 김 교사는 결과를 수정해주는 대신 실험 과정을 학생과 되짚어보고 다른 방식을 추천해주는 정도였다.

2시간여 동안 실험을 마친 학생들은 각자 결과를 꼼꼼히 기록하고 교사와 개별적으로 상담한 뒤 교실로 돌아갔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자습에 매진하는 여느 고3의 모습과는 달랐다.

IB 교육과정은 독서와 토론, 실험으로 수업을 하고 논·구술 방식으로 평가를 한다. IB 도입을 주장하는 교육학자들은 현재 한국의 교육을 '집어넣는' 교육, IB는 '꺼내는' 교육이라고 설명한다. [중앙포토]


이는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으로 진행되는 경기외고 국제반의 화학 수업이다. 이 학생들은 기말고사 때 객관식 문제 풀이 대신, 한 학기 동안 자신이 실험한 내용을 토대로 연구 보고서를 영어로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IB는 스위스 비영리 교육재단이 개발·운영하는 토론·논술형 교육과정이다. 프랑스의 대입자격고사인 바칼로레아가 철학적 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밝히는 논술 시험이라면, IB는 수업 방식과 평가, 기록이 일체화된 교육과정이다.

지난해부터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서울과 제주를 포함, 9개 교육청이 이런 IB 교육과정을 한국어로 번역해 공교육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이석문 제주교육감과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지난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IB 컨퍼런스에 참석해 한국어 번역 방안과 절차를 논의했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은 IB에 반감을 보이고 있다. 교사단체인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신동하 정책팀장은 “IB는 독서와 토론을 통해 학생이 깨달은 내용을 논·구술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라면서 “우리 교육현장에도 논·서술형 평가에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굳이 로열티를 줘가며 외국 교육과정을 도입할 필요 없다”고 반대했다. 또 지난 5월 전교조 제주지부는 제주교육청을 향해 “IB 도입에만 급급할 뿐, 내신 처리 방식이나 상급학교 진학의 유불리 등 세부안은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설익은 IB 도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의 한 사립고 교장은 “내신 1점 차이로 등급이 나뉘고 대입에 불이익이 가는 현실에서 논·구술로 내신 성적을 매기면 어떤 학생이 수긍하겠냐”면서 “한국 고교는 IB와 같은 평가를 능력이 없어 못 하는 게 아니라, 여건상 안 하는 것”이라 말했다.

반면 사교육계는 IB 도입에 발 빠르게 대비하고 있다. 대치동 교육컨설턴트인 김은실 세븐멘토 대표는 “논술학원을 중심으로 IB 관련 스터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대표는 “몇몇 학원 원장들은 태스크포스(TF)팀까지 구성해 IB 교육 방법을 논의하고 강사 구하기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학부모들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상반된 대응에 불만을 토로한다. 김지연(42·서울 양천구)씨는 “학교 교사에게 IB에 대해 묻자 ‘모르겠다’는 시큰둥한 답변뿐이었다”면서 “학원에서는 ‘독서가 중요하다’거나 ‘신문 읽기가 효과적’이라며 구체적으로 답해준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교육제도를 자꾸 흔드는데 학교는 모르쇠로 일관하니, 결국 불안한 학부모가 의지할 곳은 사교육밖에 없지 않냐”고 지적했다.

IB가 도입되면 사교육비가 폭등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자녀가 홍콩 국제학교 10학년(한국 고1)인 학부모 임모(47·서울 동작구)씨는 “IB는 수업 내용도 대학 수준으로 어렵고 과제도 많아 아이가 버거워하더라"면서 "방학 때마다 한국의 어학원에서 일주일에 200만원 이상 학원비를 써가며 IB 보충학습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학교에도 IB가 도입되면, 결국 사교육비만 수십배 늘어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이같은 지적에 IB 도입을 주장하는 한 교육전문가는 “현재 강남의 IB 사교육은 영어 수업이라 단가가 비싼 게 사실"이라며 "교육청이 추진 중인 한국어 IB를 도입하면 사교육비도 현재의 국어논술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교육 억제도 중요하지만 IB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교육방법이 무엇이냐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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