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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제 칼럼] 경건에 목마른 시대

‘경건한 사람’에 목마른 시대다. 기독교인의 삶의 태도 가운데 핵심은 ‘경건’이다. 경건(敬虔), 사전적인 의미로는 초월적이거나 위대한 대상앞에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상태에 있는 태도를 뜻한다. ‘코람데오(주앞에서)’처럼,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자세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중하며 조심하고 근신하는 말과 행동과 태도를 갖는 것을 뜻한다.

존 캘빈은 그의 대표 저서 ‘기독교 강요’ 서문에서 “나의 의도는 다만 몇가지 기초적인 원리를 기술하여 종교에 열심있는 사람들이 참된 경건의 생활을 이루도록 하려는 것이었다”고 프랑스의 프란시스1세 왕에게 보내는 헌사를 통해 밝혔다. 기독교 역사상 성경이후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기독교 강요’의 목적이 성경의 재해석이 아니라, 알고보면 종교적 열심에 빠져 복음의 본질을 이탈한 기독교인들에게 진정한 ‘경건’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을 통해 되찿고 싶었던 것은 성도의 ‘경건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경에는 경건과 관련해 특히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서신 디모데전서와 거짓교사에 속지말고 영적인 성숙에 힘쓸 것을 강조한 베드로 사도의 편지(베드로 후서)에 자주 등장한다. 사도 바울이 쓴 디모데 전서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온전히 간직한 것이 ‘경건’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 전서에서 ‘경건의 비밀이 크다’면서, 곧바로 하나님의 성육신인 예수님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음 바 되시고, 영광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경건이 영어로는 ‘Godliness’인데, 직역하자면 ‘하나님다움’ 쯤 된다. 경건은 결국 성도의 품성과 삶의 모습이 ‘하나님같이’, ‘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경건한 삶이란 결국 예수님이 걸어간 발자국대로 그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늘 고정관념의 틀안에 갇혀 생활한다. 보통 ‘경건한 사람’ 하면, 습관대로 (새벽)기도에 나가고, 식사때 기도하고, 교회의 각종 예배 모임에 열심히 출석하고, 말하는 습관과 행동이 엄숙하며 조용한 종교적 열심인 모습을 연상한다. 또는 종교기관에 성직자들을 연상한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적 열심과 습관이지, 경건의 본질은 아니다.



성경은 ‘경건의 모양’과 ‘참된 경건’을 구별하고 있다. 성경은 경건의 기본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는 과정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디모데전서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했다. 다시말하면, 통상 기독교인들이 세속적인 것이라며 이것 저것 피하고 가리며 조심하는 것이 거룩한 것과는 관계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속적이라고 딱지를 붙이고 피하며 교회문화 습관에 익숙한 행위들에 매순간 되풀이하며 열중하는 것이 경건한 삶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적 의미에서 ‘경건’은 기존 종교적 형식과 교회 습관과 관례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다. 거룩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듯이 참된 경건은 모든 고정관념의 경계선을 뛰어넘는다. 예수님은 아무도 만지지 않으려 했던 당시의 불가촉 천민, 저주받은 인간인 문둥병자의 문드러진 피부를 직접 만지시고 위로하시고, 치유하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아야 할 곳이 없듯이, 복음에는 그 어떤 거리낌이나 피해야 할 경계선이 없다. 경건도 마찬가지다.

신약성경에서 ‘경건한 사람’으로 처음으로 등장한 인물은 유대인이나 초대교회 성도가 아니라, 이방인이다. 유대인들의 원수인 로마 군 장교 고넬료 백부장이다. 사도행전(10:2)은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나님의 성품, 예수님의 성품이 생활화된 경건한 삶이 어떠한지를 이방인을 통해 성경은 소개했다. 모든 집안 식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고, 백성을 많이 구제한다는 것이고, 항상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가 열심히 모든 예배를 참석했다거나, 회당에서 집사나 장로로 일했다는 기록은 없다. 참된 경건은 경건한 삶은 내부적으로 각종 말썽을 일으키는 종교조직체 내부의 종교활동과는 전혀 상관없을 수 있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사도는 이와 관련 이렇게 경고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26-27)

하나님의 품성,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대로 나에게 실현시키는 ‘하나님다움’의 ‘경건’의 삶은 종교적 열심에 있지 않다. 경건은 바로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가장 연약한 자, 고아와 과부로 표현되는 의지할 곳없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것이다. 경건은 또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나의 재원(재능과 물질과 모든 복)을 자신의 유익함(쾌락)을 극대화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세속적인 것이다. 경건은 세속화와 정확하게 반대 방향이다. 내가 할 의무가 없지만 도움을 주어야 할 약한이들을 찾아 나의 것을 퍼서 실제 도움을 주는 것이 ‘경건’이다. ‘경건’은 주님이 남긴 최고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살아가는 일상의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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