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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모자(帽子)

외출하러 문밖을 나서기 전에 반드시 챙기는 것이 있다. 면허증이 든 지갑, 차와 집 열쇠가 달린 열쇠 꾸러미, 그리고 핸드폰이다. 열쇠 꾸러미가 없으면 차의 시동을 걸 수 없으니 이놈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다. 차 키를 들면 늘 운전 면허증이 연상되는 내 사고체계 때문에 지갑도 늘 따라간다. GPS를 켜고 어디를 찾아가는 일이 아니면 스마트폰을 잊는 때는 더러 있다. 그런데 70 중반을 넘으면서 지갑을 잊는 경우도 어쩌다 생긴다. 식품점에서 체크아웃하려다가 지갑을 집에 두고 온 사실을 알고 낭패를 보기도 했다. 이런 건망증과 부주의가 나이 탓이려니 자위하면서도 내 딴에 예방책이랍시고 집 문턱을 넘기 전에 마음속으로 1-2-3 하며 주머니를 더듬어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다.
언제부터인지 이 세 가지 확인 사항에 모자까지 곁들게 됐다. 공원이나 몰에서 걸을 때 써버릇했더니 모자를 쓰는 일이 이젠 몸에 밴 것 같다. 사실 모자야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데 자주 쓰고 나가다 보니 이것도 꼭 챙기게 된 것이다. 자동차에 앉아 시동 걸려다가 머리가 허전해서 모자 찾으러 집안으로 다시 돌아 들어가는 일이 가끔 있다. 마누라가 아예 모자를 차에 놓고 다니면 어떻겠냐고 해서 이제는 차 뒷좌석에 모자 두어 개를 여벌로 놓고 다닌다. 모자래야 중절모자나 베레모는 아니고 캐주얼한 복장 차림인 내게 알맞은 야구선수들이 쓰는 운동모자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동안 모인 모자의 수도 꽤 되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골프,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 각종 스포츠와 그 팀이 있는 지역, 도시를 망라한다. 외국 여행 다녀온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모자도 많아 세계 여러 나라와 주요 명승지를 한곳에 모아 놓은 모양새다.

얼마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딸이 하와이에 휴가를 다녀오면서 미주리 함(USS Missouri)이 수 놓인 모자를 선물로 보내왔다. 미주리 전함 박물관을 둘러본 기념품이다. 미주리 전함은 지금은 퇴역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에서 맹활약을 했던 군함이다. 일본이 맥아더 사령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항복문서 서명을 그 선상에서 했고, 그 후 한국전에 참전해 인천 상륙작전과 흥남 철수작전을 지원하기도 한 한국과 인연이 깊은 군함이다. 새 모자인 데다 모자 앞에 수놓은 빨강 노랑 글자들이 돋보여서 아침에 몰에 걸으러 나가면서 쓰고 가기로 했다.

몰에 들어서서 걷기 시작하는데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웬 중년 백인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손을 덥석 잡으며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service!”(당신의 봉사에 감사합니다) 하는 것 아닌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얼떨결에 영문도 모른 채 “Thank you”로 되받으며 앞서가는 마누라를 좇아갔다. “내가 무슨 ‘서비스’를 했지?” 하고 나서 번쩍 떠오른 생각이 내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였다. 아차 싶어 돌아가서 사실을 밝힐까 했지만, 그는 이미 멀어져 가고 있었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들면 내가 받을 감사는 아니지만 내가 한국 공군에서 5년간 복무했던 것도 봉사가 틀림없으니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미국민들이 자국 군인들에 대한 태도가 유별나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Support our troops’(우리 군인들을 지원하자)는 미국에서 자주 듣는 슬로건이다. 반세기 넘게 미국에 살면서 느낀 것이지만, 비록 정부의 군사·외교 정책에는 반대하더라도 군인들은 전폭 지원하고 도와야 한다는 미국 사회의 불문율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온 다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나라를 지키고 봉사하는 군인들을 존중하고 감사하는 문화. 부럽기도 하고 이것이 미국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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