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현 문학칼럼: 잔디에 누워
그런데 꿈이었다. 꿈은 마치 조르주 쇠라의 그림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같았는데, 현실은 뭉크의 <절규> 에 가까웠다. 이틀 전인 월요일은 내게 휴일이라 혼자 한국 마트에 가서 김치와 두부를 샀고, 미용실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에 일어났다. 잠을 자는 동안 머리가 좀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 여덟 시. 일어나자마자 ‘털내미’(털+딸내미) 산책을 나갔다. 간밤에 응가와 쉬야를 참았을 애완견을 생각해서 내 게으름을 방지하고자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서 잠바를 꺼내 입고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물도 마시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십 분쯤 지났을까. 잔디밭에 도착했다. 잔디밭은 아침 서리가 얼어 허옇다. 푸른 잔디는 커녕 보기만해도 차가움이 전달된다. 그런데 그 잔디에 도착하니, 강아지 줄은 여전히 내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데 눈에 보이는 세상이 빙글 뱅글 돌아간다. 그 순간 ‘어어, 이게 뭐야? 아니 왜 내 몸이 주체가 안되지?’ 이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툭,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 눈을 떠 보니 글쎄 눈 앞에 온통 그 하얗고 푸른 잔디가 쫙 깔려있다. 나도 모르게 그 짧은 순간 오른쪽으로 기절을 했다. 허허허. 아빠가 웃는 그런 사람 좋은 웃음은 아닌데 그와 유사한 소리가 나왔다. 어이 없음이 담긴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야? 영화도 아니고. 혼자 개 산책 시키다가 오른쪽으로 기절한거야? 사태의 심각성보다 그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되었다. 약간 머리가 아팠다.
집으로 돌아와, 간호사 도움 전화(Nurse Advisory Line)에 전화를 걸었다. 내 이야기를 쭈욱 듣더니 그녀는 ‘이알Emergency Room에 갈 필요는 없지만 어전트 케어Urgent Care에는 가 보란’다. 만약 머리가 아픈 게 지속되면 그건 안 좋은 징후라면서 말이다. 여기서 새로 배운 영단어는 버티고 Vertigo 현기증이랜다. 샤워를 하고, 일단 개를 데이케어에 맡겼다. 구글 지도에서 말해주는 대로 어전트 케어에 들어갔다. 처음 가 본 길과 병원. 긴 긴 기다림 끝에 간호사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 이거해 봐라 저거해 봐라 갖가지 동작들을 시켰다. 손가락을 코에 갖다 대고 그녀의 손가락에 갖다 대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다만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할 때는 다시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고, 내 몸도 앞뒤로 흔들리는 것 같다. 그녀는 또 내 말을 듣더니, ‘훔. 어지러운것과 두통은 차이가 있는데, 만약 이 둘이 함께 있다면 원인을 파악해야 하니, 이알에 가 보’란다. 이알. 미국의 병원비는 나처럼 운 좋은 사람에게도 무서운 대상이다. 남편 덕에 의료 보험이 무료이긴 한데, 그래서 내가 내는 돈이 없다 치더라도, 청구서에 나온 숫자들은 뭔가 내게 심적 부담감을 준다. 남편에게 뭔가 밥이라도 한끼 더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거다. 그래도 일단 밥을 수십끼 더 해주는 한이 있더라도 간호사가 한 말이니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그녀는 심지어 내게 운전을 하지 말란다. ‘대신 운전해 줄 사람 없어요?’ -네. 없어요. 이 도시엔 남편 밖에 없고, 이 나라엔 친정 식구가 없는걸요. 나 불쌍하죠? 불쌍 코스프레를 하려고 했으나, 그땐 나도 정신이 들었다. 길을 가다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진 것도 아니고, 말그대로 기절을 해서 잔디 위로 쓰러졌으니 확인을 해야 한다. 내 머리통이 멀쩡한지를……
간호사에겐 우버를 불렀다, 말하고 혼자 조용히 차를 몰고 이알로 갔다. 구글 리뷰에 나오는 이알은 왜그리 온통 나쁜 리뷰만 있는지 가 보기도 전에 우울감이 덮쳤다. 기본 대기시간이 4시간이랜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알Emergency Room이라고 이름을 부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구글 리뷰를 읽은 게 나았다. 오후 두 시 반에 들어가서 저녁 일곱 시에 나왔고 그 중 팔 할은 대기시간이었다. 환자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캣스캔을 찍고, 피를 뽑고, 아이브이 주사도 맞고, 소변 검사까지 했다. 그러지 않아도 피검사로 당뇨, 빈혈 확인을 하고 싶었는데 이왕 여기 온 김에 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내 유일한 1인인 남편이 일에서 빠져나와 병원에 왔다.
쓰기다. 쓰기를 통해 나는 내 자신이 될 수 있다. 사실 왜 쓰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써야 할지도 막막하고, 쓰는 행위 자체에 도달하는 것도 무척이나 지루하고 지난한 난간들을 통과해야 겨우 몇 장 쓴다. 그럼에도 잔디들은 내게 속삭인다. ‘그래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써야해. 그게 너가 너 자신이 되는 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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