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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춘삼월 강풍이 준 ‘뜻 밖의 선물’

새록새록 꽃 필 무렵인 춘삼월에 왠 강풍이 온 동네를 강타했다.

대학 다닐 때 생일이 있는 3월 마지막 주면 더욱 모양을 내고 싶은 마음에 꽃샘 추위 대신 따뜻한 날을 기대하면서 외숙모가 사 준 예쁜 연둣빛의 얇은 코트를 입고 명동 버스 정류장에서 덜덜 떨었던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 그 때 나의 철없음이 꽃 피는 계절에 닥친 강풍의 철없음과 어찌나 다를 바 없어 보이던지.

때마침 남편은 난생 처음으로 대학 동창들과 해외여행 중이었으니 강풍으로 새벽에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린 상황에 대한 뒤처리는 모두 나의 몫이었다. 평소 남편이 대부분 집안일을 돌봤으니 우선 차고 문조차 열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나름 어깨너머로 배운 대로 열어 보려니 어림도 없어 쩔쩔 매던 찰나에 다행히 착하고 키가 큰 프랑스계 이웃 남자의 도움을 받아 한 고비를 넘겼다.

이날은 정말이지 인력으로도 멈출 수 없는 거센 강풍 탓에 동네 학교도 연방 정부도 모두 문을 닫는 바람에 나도 가게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로 인해 나 역시 남들과는 또 다른 형식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대신 딸네 식구들과 서로가 계획에도 없던 쇼핑센터 나들이 할 기회를 누렸으니 어쩌면 감사하게도 바쁘게 살아온 내게 하늘이 내려준 ‘뜻 밖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하늘의 선물은 13살 외손주에게서 발견했다.

사실 강풍이 불었던 주말, 외손주는 아주 중요한 사이언스 페어와 농구 게임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친구에게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려고 이 행사들을 스스로 모두 포기하고 교회 수양회에 참석했는데 때마침 강풍으로 예정된 행사가 취소되고 다음으로 미뤄졌다니, 이게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 아닐까?

강풍의 타격은 바람이 잔잔해진 다음에도 곳곳에서 흔적을 남겼다. 평소 즐겨 마시는 헤이즐럿 커피를 사려고 큰 마트에 들렀더니 3일 동안 전기가 나가 컴컴하고 추운데도 불구하고 손님을 배려해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헤드라이트를 낀 직원이 손님을 한 사람 한 사람 친절하게 안내해 주며 물건 찾는 걸 도와주고, 손으로 직접 인보이스까지 써주며 20% 디스카운트도 해준다. 이 역시 강풍이 아니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우리 사회의 살아있는 인심 어린 풍경일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 4:6)”는 말씀이 있다. 이렇게 감사는 언제나 나를 변화시키고, 주변을 변화시키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갑자기 당한 강풍을 탓하지 않고, 되레 이를 통해 따뜻한 이웃과 가족과 또 정성 가득한 상인들을 만날 수 있는 이 모든 기회를 주신 하늘의 선물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은 그야말로 감사한 일이다. 살다 보면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기적들을 만나는 순간이 참으로 많다. 강풍도 눈도 한 차례씩 다녀 갔으니… 이제 어딘가 가까이서 따스한 봄이 오고 있겠지. 오늘도 예고 없이 문득 찾아올 철없는 봄을 마음으로부터 기다려 본다.


최숙자 / 비엔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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