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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야구선수의 명암

최근 두 유명 야구선수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 야구인은 물론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 사람은 67년 대통령배에서 홈런상과 미기상을 수상하며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어 선린상고 전성시대를 이어갔던 이영완 선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조성민 투수다.

 조성민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여배우 최진실의 남편이었던 사람이다. 두 사람 모두 한 시대를 주름잡던 대단한 실력을 갖춘 야구선수였다.

 그런 두 사람 중 한 명은 장충단 공원 리틀리그 야구장 덕아웃에서 영하 10도가 되는 추위에 덮을 것도 없이 자다가 동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삶을 비관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했다.



 이 두 사람은 비슷한 야구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이영완 선수는 60년대 말 박현식 감독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눈독을 들였다가 제일은행으로 데려갈 정도로 실력을 출중했던 대형 선수였다. 그 당시 제일은행이 선린상고 구장에서 연습을 자주했었다. 그래서 박현식 감독이 자연스럽게 선린상고 선수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는데 나중에 이들 대부분을 제일은행으로 스카우트했다.

 바로 그 주인공들이 김태석, 윤효상, 김우열, 박준영 등. 제일은행 야구의 핵을 이루는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 한사람이 바로 이영완 선수였다. 박현식 감독이 이영완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열한 주전자리 다툼에서 선배들에게 밀려나면서 기대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8번 타자로 쳐지게 되면서 야구에 대한 열정을 잃고 유니폼을 벗고 말았다.

 그후 지방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실패한 후 이혼의 아픔을 겪게 되고 술로 시련을 달래다 잠시 리틀리그 심판으로 활약했지만 결국 젊은 시절 화려한 야구 인생을 뒤로하고 쓸쓸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조성민 역시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의 소유자였고 신일고와 고려대 시절 제일 잘나가는 92학번 선수로 동년배 선수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졸업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스카우트 될 때만 하더라도 승승장구하는 듯싶었는데 팔꿈치 부상을 가볍게 여기며 방송출연과 모델 활동을 하면서 치료를 소홀히했다. 결국 일본프로야구의 꿈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하는 불행과 이혼이라는 상처 그리고 전 부인의 자살 등 불행의 그림자가 계속 그를 따라 다니며 괴롭혔다.

 한때 김인식 감독의 배려로 한화에서 다시 재기하는가 싶더니 야구해설자로 변신했다. 그 후 두산의 부름을 받고 투수코치로 1년 동안 활약하다가 재계약을 포기하고 얼마 후 가족들에게 죄송하다는 유서 한 장을 남겨놓고 40이라는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사실 이영완 선수는 필자의 고등학교 3년 선배다. 야구만 잘한 것이 아니라 성격도 좋은 동네 형 같은 선배였다. 지금도 그의 해맑게 웃는 모습이 기억난다. 이 선배의 부음을 듣고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세상을 등질 형이 아닌데 하고 말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와 올해초 훌륭한 야구인들을 연달아 잃은 아쉬움이 많은 시간이었다. 화려한 영광 뒤에 불행이 따르는 모든 선수의 공통된 인생인 듯싶다.

 글·사진: 김태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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