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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 - 한국야구의 숨은 공로자 이덕준 코치 (1)

언제부터인가 현대는 자기 PR 시대라는 말이 유행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먼저 나서서 알리라는 말이다. 서서히 겸양의 미덕은 바보 같은 어리석음이 됐다. 이것이 요즘 세태다. 나무를 끌어안고 불에 타죽은 개자추의 이야기 생각난다.

오랜 방랑생활에 춥고 배고픔에 지쳐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주군 진문 공을 위해 그는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사슴고기라고 바치면서까지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문고 중이는 논공행상에서 가장 공이 컸던 그를 제외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만 못한 동료는 봉록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개자추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명산으로 들어가 세상을 등지고 어렵게 살아간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무공은 직접 그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가 점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숨자 산에 불을 지르면 뛰쳐나오리라는 생각으로 불을 놓지만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나무를 끌어안고 불에 타 죽고 만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국 야구의 숨은 공로자 고 이덕준(전 몽고메리칼리지 투수 코치) 씨 인생사는 이 개자추 이야기와 흡사하다. 미국인 스스로 ‘워싱턴 야구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던 이 코치는 1935년 만주에서 출생했다. 광복 후 서울로 이주해서 경기중학교에서 투수로 활약했다. 6·25 동란 때 미군 통역관으로 일하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 이민 왔다.

고된 이민생활 가운데에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어 1970년대에 한국국가대표팀이 미국에 원정오면 교민들을 동원해 응원은 물론 선수들의 숙식과 미국 실업팀과 대학팀과의 친선경기까지 마련했었다.

그의 도움을 받았던 대표팀 선수들 모두가 한국프로야구를 주름 잡던 선수들이다. 박철순, 최동원, 김시진, 이선희, 선동열, 이해창, 유남호, 이만수, 박해종, 김봉연, 김재박 등 빛나는 선수들이 이 코치의 도움을 받았던 선수들이다. 특히 박철순은 워싱턴 대표팀과 6회까지 무실점하는 호투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어 한국야구 처음으로 미국 프로 무대에 오르는 기회가 열렸고, 최동원 역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스카우트되는데 다리 역할을 한 주역이다.



1977년 니카라과 세계야구연맹 총회에서 이 코치는 미국대표단 임원 자격이었지만, 한국의 박상규 야구협회 부회장을 도와 한국이 국제경기를 유치할 만한 경제적 능력과 실력이 된다며 중남미 대표들을 설득했다. 이러한 능력을 인정한 LA 다저스에서 수석고문으로 또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는 한국 담당 감독관으로 임명하여 김선우 투수(현 두산 베어스 투수)를 비롯하여 여러 선수가 미국프로야구에 진출하도록 도왔다. 이렇듯 한국야구를 위해 커다란 업적을 남겼지만, 한국체육계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는데 인색했다.

그럼에도 이덕준 코치는 개자추처럼 꿋꿋하게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일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그를 아끼고 사랑하던 동료 미국인 야구 감독 코치 그리고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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