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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카페]인문학의 감성 나그네, 백순 시인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4/19 08:35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 화창한 봄 하늘이 드높다 싶더니 갑자기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봄이 오나 싶더니 겨울이고, 이 비는 또 봄비가 맞으려나? 봄이 참 안 오네요.” 뭔가 문학적 느낌보다 철학적 느낌에 더욱 강하게 이끌리며 백순 시인과 마주했다.

백 시인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국과 미국 세 군데 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 28년간 연방정부 노동성에서 경제학자로 근무한 후 현재까지 대학에서 경제학 및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다. 또 세 군데 문학지에서 시인으로 등단하고 이후 수필가로 또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인문학의 문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학문적 여유. 경제학은 대학 전공이니 나이 스물을 넘겨서라지만 문학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백 시인은 “내게 문학의 시초라면 중·고교 시절 문예반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방학이면 세계 문학 전집 하루 한 권 읽는 걸 목표로 삼아 헌책방을 전전했던 게 계기랄 수 있겠다”고 회상한다. “가장 좋아하시는 책이 뭘까요?” 질문이 절로 세계 문학에 꽂혔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가장 좋아해요.” 문학을 넘어 철학과 심리, 종교를 아우르는 작품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란다.

2000년대 초부터는 미국의 형이상학 시인 폴 멀둔의 ‘시의 끝은 어디인가? (The end of the poetry)’라는 강의를 듣고 미국 시집에 심취, 『형이상학 시인론(2007)』을 비롯해 『미국 계관시인론(2014)』과 『영국 계관시인론(2014)』을 출간했다. 백 시인은 “한국 시의 특징이 ‘한’이나 ‘서정’ 등 감정에 의지한 것들이라면 미국 현대 시는 논리적이고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것들이 주제”라며 영시에서는 드러나는 인간 내면의 정체성이 매력으로 느껴져 지금까지도 정말 많은 영시를 읽고 있단다.

문학을 마음에 품고 다양한 인문학 활동을 하는 복합 성향의 원천에 대한 궁금증은 ‘아버지 소개’로 이어졌다. 백 시인은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또 정치인이신 백관수 선생”이라며 “어릴 때부터 아버지나 아버지 주변 분들에 의해 자연스레 세상사에 눈과 귀가 열렸던 것 같다”고 귀띔한다.

하지만 활발하게 활동하시다 갑자기 6.25 전쟁 도중 납북되신 아버지에 대한 애련함은 백 시인의 삶에 늘 과제처럼 남아있다고. “북한에 아버지 무덤이 있다고 들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 빈 무덤을 만들어 놓으셨죠. 그 무덤으로 아버지를 모시기 전까지는 평생 마음이 편치 못할 것 같습니다.” 백 시인의 얼굴이 살짝 어둡다.

아버지 이야기로 찾아 든 잠깐의 머뭇거림. 백 시인이 문득 시집을 펼치며 공백을 깬다. 백 시인은 “쓴 시 중에 ‘봄은 멀구나’ 하는 시가 있는데 이는 아버지의 빈 무덤을 채우기 전까지 진짜 봄을 느낄 수 없는 내 처지일 수도 있고, 이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말 못 하는 제약을 받으며 평생 봄이 오지 않는 듯한 삶을 살아가는 이민자 이야기 일수도 있다”고 털어 놓는다.

이렇게 글로써 본인의 마음을 표현한 건 30년 전 교회를 다니면서부터다. 백 시인은 “기도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계절에 맞춰 하나님 사랑 문신해서/그래도 주신 사랑 넘치면 내가 편지가 되겠다’ 이런 식으로 쓰다 보니 이게 곧 시편 같았다”며 이를 계기로 『그래도 주님 사랑 넘치면(1999)』『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은혜의 눈송이를(2005)』『워싱턴 광장에서 시편을 읊으리라(2015)』 세 권의 신앙 시집을 통해 자신의 내면적 심정을 표현했다.

또 최근 발간한 『징검다리(2016)』에서는 ‘한글’과 ‘한국어’라는 돌다리를 딛고 미국이라는 개울을 건너가는 이민자의 삶, 즉 자신의 현실적 삶을 담았다. “우리가 평소 느끼는 감정은 삶 일부분일 뿐 전체가 아니다”라며 “한구석에서 쓸쓸함을 느끼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도 내 삶의 일부”라고 말하는 백순 시인. 겨울과 봄, 봄과 여름 사이를 저울질하는 계절을 지날 때면 백순 시인의 ‘봄 타령’이 바람결을 타고 삶에 스르르 흘러 들 것 같다.



봄은 멀구나

앞뜰에도
뒤뜰에도
길가 웅덩이에도
먼 돌산에도
온 동네에 봄이 오고 있네

새 색시 문 여는 모습으로
스쳐오는 흐뭇한 바람
강아지 눈 졸리 우는
따스한 빛
엊그제 남은 눈 부스러기 쓸어 내리고

아직도 썰렁한 한기를 풍기는
봄바람
상기도 청명한 풍경을 비추이는
봄빛
봄 같지 않은 봄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기다림이
풀리지 않아서인가
여름에 들이닥칠 마주침이
두려워서인가
봄은 멀구나

사진: 투데이 -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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