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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 실천해야 내 것

어떻게 하면 로또에 당첨될까? 편의점에 가서 복권을 산다. 많이 사면 당첨될 확률이 높아지고, 적게 사면 확률이 낮아진다. 그뿐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로또도 편의점까지 걸어가서 산 사람이 당첨되듯 변화를 원한다면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

3년 전 미국 유학길에 오른 A는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곧바로 기업 마케팅 매니저로 취직했다. 막힘 없이 술술 풀려나가는 그녀의 인생이 부러웠다. 그저 먼발치서 바라보기에는 행운과 실력이 딱 맞아 떨어진 ‘꽃길 인생’ 같아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 A를 만나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공을 살려 미국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300군데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냈고, 하와이, 보스턴, 시애틀까지 가리지 않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는 사연이다. 지원했던 회사에 줄줄이 낙방했을 때는 ‘미국에 계속 남으려면 시민권자와 결혼해 영주권을 받는 방법뿐인가’하는 생각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면 학생비자가 만료되기 때문에 그 전에 어떻게든 직장을 구하기 위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학생비자를 갖고는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조차 불가능하다. 부모님의 지원으로만 유학생활을 하는데, 말로 다할 수 없는 죄스러움과 압박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화려해 보이는 미국 유학, 미국 취업의 또 다른 그림자다. 대부분의 미국 취업준비생이 A와 같은 심정이리라.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저 나이기만 하면 돼’(사진)를 쓴 노경원 작가 역시 미국에서 스튜어디스로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상처받고, 성장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세계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점, 가족이 있는 한국에 자주 갈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항공사에 지원서를 넣었다. 화려한 외모와 대단한 집안을 가진 지원자들 속에서 그녀는 몇 명 되지 않는 동양인이었다. 결국 100명 중 6명만 뽑는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합격했다고 곧바로 스튜어디스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8주 동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포함해 총 25회의 시험을 치르는데 각 과목당 평균 90점 이상이어야 한다. 기회는 모두에게 한 번씩 주어진다. 필요한 점수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제외된다는 말을 안 믿었지만, 같이 공부하던 동기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자 현실이 보였다. 이틀에 한 번씩 치르는 테스트가 버거워 그녀 역시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8주를 보내고서야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



그녀가 최종 합격한 날. 새하얀 백지 같았던 미국생활이, 아무런 이름도 없었던 하루가 비로소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 거대한 미국 땅에서 아주 작지만 따뜻하고 안락한 내 자리를 마련한 기분이었다. 영어와 인종과 국적의 문제로 자신을 질질 끌어내리고 있던 실체 없는 두려움을 비로소 잘라낸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1년의 수습 기간까지 무사히 견뎠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 토박이가 영어생활자로 살아가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고비마다 언어의 장벽을 실감해야 했다. 업무 매뉴얼을 외기도 부족한 시간에 회화 공부까지 병행해야 한다. 게다가 어디를 가나 진상손님은 존재하는 법. 누구나 그렇듯 회의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오늘도 비행 중이다. 진상손님으로 인해 다친 마음은 비행기 창 너머 이국의 아찔한 풍경을 감상하면서 치유한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녀라고 왜 향수병이 없었겠는가. 미국에 온 뒤 처음 1년 동안은 항우울제 복용을 고민할 만큼 힘겨웠다. 한국에서는 늘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몰아붙였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한 나날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녀의 향수병은 완치되지 못한 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주변의 시선에 강요당한 열정이 아닌 ‘가슴이 시켜서 하는 일’을 찾아 누구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적응하고 있다. 상상했던 내일을 위해 지금, 이곳, 나에게 충실한 결과이다.

이소영/언론인, VA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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