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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성범죄자가 반성을 알까

2017년 10월 기사 하나에 할리우드가 발칵 뒤집힌다. 뉴욕타임스는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30여 년간 여배우와 여직원을 성추행해 왔다고 보도했다. 와인스타인은 아니라며 펄쩍 뛰었다. 오히려 뉴욕타임스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할리우드를 좌지우지하던 거물 영화제작자는 그러나 여배우들의 폭로에 꼬리를 내리게 된다. 애쉴리 저드, 기네스 팰트로, 앤젤리나 졸리 등 수많은 여배우가 와인스타인의 악행을 공개했다. 이후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는 #Me too(미투) 캠페인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와인스타인 폭로기사 이후 1년 동안 정치, 연예, 문화 등 미국 사회 전반의 유명인 429명의 성추행 기사가 보도됐다. 업종별로 보면 정치, 정부공무원과 연예계 종사자가 각각 96명으로 가장 많았고 예술 음악계(58명)와 미디어(48명)가 뒤를 이었다. 하루 한 명 이상의 유명인들의 추악한 민낯이 만 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처벌은 공개 망신 수준에 그친 경우가 많다. 성추행 혐의를 받은 정부 공무원 59명 중 35명이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망신이라도 줄 수 있지만 벙어리 냉가슴만 앓아야 하는 피해자도 많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되거나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미 평등고용기회 위원회 조사결과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한 4명 중 3명은 회사나 노조에 보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투'캠페인이 시작된 지 2년째 되가지만 성추행 피해자를 위한 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캠페인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월 서지현 검사의 용기가 한국 '미투'의 시작이 됐다. 서 검사는 JTBC '뉴스룸'에서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성추행과 인사보복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각계 유명인사에 대한 수많은 미투 고발이 이어졌다. 정치, 문화, 연예, 스포츠계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가해자가 응당한 대가를 치른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의 성폭행 혐의가 수면 위로 올라와 충격을 주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조 코치의 폭행을 견딜 수 없다며 선수촌을 뛰쳐나갔던 심석희 선수는 조 전 코치에게 받은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심 선수 측이 제출한 고소장에는 미성년자인 만 17살 때부터 조 전 코치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적혀 있다. 심 선수가 선수 상습폭행으로 이미 구속된 조 전 코치를 성폭행으로 추가 고소한 것은 그를 곧 다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조씨는 폭행 피해자들과 합의를 시도해 형량 줄이기를 하는 한편 폭행으로 대표팀 코치직에서 물러난 뒤 중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준비했다. 반성은커녕 재기를 노리는 그를 막을 방법은 또 다른 고통을 드러내는 것밖에 없었다.

'미투' 이후 미국 사회 변화를 취재하기 위해 빌 코스비, 하비 와인스타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행 피해자 변호를 맡고 있는 글로리아 알레드를 만났다. 40여 년간 여성인권 변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를 대변해 온 그는 피해 여성들의 두려움에 대해 말했다. 이 두려움이 가해 남성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두려워 말하지 못할 것을 이용하는 성범죄자들을 그는 '약탈자'로 표현했다. 성추행 피해를 입은 유튜브 진행자 양예원 씨는 가해자에게 실형이 선고된 직후 기자들 앞에 서서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잘못한 거 없으니 숨지 말고 용기를 내라며 눈물을 흘렸다. 두려움을 무기로 쓴 약탈자를 두렵게 만들 강력한 사회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부소현 JTBC LA특파원·부장 bue.sohyu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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