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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242>브라질 흑인 노예의 저항2

1678년 도저히 팔마레스를 힘으로 굴복시킬 수 없자 브라질 총독 카스트로는 사면을 조건으로 특사를 보냈다. 팔마레스 3만 명 주민의 대표인 강가 줌바는 카스트로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팔마레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강가 줌바는 브라질 야전군 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총독은 우정의 증표로 강가 줌바의 두 아들을 양자로 들였다. 헤시페에서 열린 평화회담에서 포르투갈 왕실 대표와 팔마레스 연맹 대표는 팔마레스를 모두 비우되 그곳에서 태어난 자는 자유인이 되고 노예의 낙인이 남아 있는 자는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조건에 합의했다. 그러나 강가 줌바를 따르는 주민은 전체 3만명 중 5000명 뿐이었고 나머지 노예들은 줌바의 조카인 줌비의 지휘로 다시 브라질군과 전투에 들어갔다.

이제 힘이 빠져버린 팔마레스를 향하여 다시 브라질군의 총뿌리가 불을 뿜지만 팔마레스는 쉽사리 함락되지 않았다.

1694년 브라질 당국은 최종적으로 팔마레스를 쓸어버리기 위하여 악명 높은 노예 사냥꾼인 도밍구스 호르헤 베요와 계약을 맺었다. 도밍구스는 팔마레스를 초토화시키는 조건으로 넓은 땅과 많은 흑인 노예 부하들에게 나누어 줄 계급장 30개도 약속 받았다. 도밍구스의 총병력은 9000명이나 되는 데다 대포까지 동원됐다.

접전 며칠 후 팔마레스는 함락돼 줌비는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겨우 몸을 피한 줌비에게 동료이자 이미 배신하기로 작정한 안토니오 수아레스가 다가왔고 해후한 둘은 반갑게 힘껏 포옹했다. 그 순간 배신자 안토니오는 단도를 빼내어 줌비의 등을 찔렀다. 그리고 브라질군에 항복했다.



거의 한 세기에 걸쳐서 브라질군의 40여 차례 공격을 물리쳐온 흑인 노예의 이상향이자 자유의 보루는 사라졌고 흑인 노예들의 마지막 저항도 막을 내렸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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