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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국총영사관서 'LA바로알기' 펴내

'서울에서 입양된 패트리샤 리아가 민간인이 입양한 최초의 전쟁고아로 LA 인근 글렌데일 지역에 입양됐다.'1953년 12월 21일자 LA타임스 보도

1955년 홀트법으로 불린 한국전쟁 고아 구제에 관한 법이 통과된 이후 당시 LA총영사관에는 희망 입양조건과 동기를 적은 서한이 코네티컷 아이오와 미시간 텍사스 등 미 전역에서 접수됐다. 한국전쟁 직후 로스앤젤레스(LA)는 '미국에 온 검은머리 아이들'이 도착하는 관문이었다.

훨씬 더 앞서 1905년 당시 하변(河邊)이라 불리던 LA 동부 리버사이드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인 노동자들에게 오렌지농장 철도부설 공사장 일자리를 주선하며 공동체를 세웠다. 미 본토 최초의 한인타운인 '파차파 캠프'였다.

한인들은 낮에는 오렌지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을 열어 영어를 배우고 일주일에 두 번 예배했다고 한다.



항일비밀결사 신민회는 파차파 캠프에서 태동했다. 공립협회 창립의 중심 역할을 한 인물 중 상당수가 파차파 캠프에 거주했다. 1911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LA는 미주 한인 이민사에서 항일독립운동의 시작점이자 한인 입양 그리고 1970~80년대 이민 러시의 관문이었다.

LA총영사관(총영사 김완중)은 최근 'LA 바로알기: 한국 밖의 한국'이라는 소책자를 펴냈다고 26일 밝혔다.

한국에 가장 친숙한 미국의 도시이면서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LA에서의 한인 이주사와 굵직한 사건들을 담았다.

'도산의 꿈'으로 시작하는 책자는 LA 남쪽에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주력부대인 미 해병 1사단 주둔지 캠프 펜들턴이 있다는 내용으로 옮겨간다.

LA 출신인 전쟁영웅 김영옥 대령의 이름을 따 지난 7월 5일 LA시를 관통하는 5번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김영옥 기념 고속도로'로 지정한 내용에 이어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라는 노래로 알려진 1970~80년대 이민 붐을 소개한다. 그리고 1992년 4월 29일. 한인타운 2300개 업소가 전소하는 4.29 LA 폭동은 한인 이민사의 가장 불행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LA에서는 다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고 최근에는 한류 확산의 전진기지로 큰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LA총영사관은 동포사회 자산의 공동 활용 한인 정치력 신장 입양인 시민권법 제정 등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김완중 총영사는 "지난 10년간 한인 신규 이민자는 5만 명이 채 안 되는 등 한인 유입이 감소하고 있다. 한인 2세 3세들의 정체성 유지가 앞으로 한인 사회의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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