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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 LA 한인 독립운동 동향도 살펴"

총영사관 주최 이민사 포럼
임시정부에 독립자금 지원
내부 분열 동력상실 아쉬움

"일제강점기 한인 독립운동은 눈에 띄게 활발했지만 한계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한인 이민선조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조국 독립운동자금을 보냈고, 일본 정부는 하와이와 LA 등지에 비밀경찰을 파견해 동향을 살핀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LA다운타운 빌트모어 호텔에서는 LA총영사관(총영사 김완중) 주최 '한인 이민사 포럼(Korean Diaspora Forum)'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주류 학자 및 교육자, 한인 차세대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기조연설자로 나선 웨인 패터슨 교수는 제삼자 시선으로 본 초창기 한인사회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했다.



'아메리카로 가는 길·하와이 이민 1세' 저자인 웨인 패터슨 교수에 따르면 1903년 1월 13일부터 약 3년 동안 하와이 이민을 시작한 한인 이민선조 7500여 명은 조국이 일본 제국주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일본 국민임을 거부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에 수립되자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일제강점기 초기 한인사회는 조국 독립의 염원을 대한인 국민회(도산 안창호 주축) 한 곳으로 모았다. 대한인 동지회(이승만 주축)가 갈라져 나와 두 단체가 세력 다툼을 벌이자 한인사회 독립운동 역량도 삐걱대기 시작했다.

패터슨 교수는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하와이와 미주 본토에 비밀경찰을 보내 한인사회 동향을 살폈다"면서 "비밀경찰은 본국에 한인이 독립운동단체의 강요에 독립자금을 기부하고 액수도 알려진 것보다 적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26년 일본 제국주의는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패터슨 교수는 그 이유를 한인사회 내부 분열로 꼽았다. 그는 "1926년 일본 정부는 미국 내 한인 독립운동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들은 한인단체 간 내부 분열이 동력을 잃게 했다고 봤다" 전했다.

패터슨 교수는 대한인 동지회의 독립자금 착복설도 다뤘다. 그는 "하와이 대한인 동지회 활동가들은 항상 좋은 양복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비싼 식당을 다녔다"라며 "한인들이 낸 독립자금을 임시정부에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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