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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칼럼] 마르지 않는 나라 곳간?

트럼프 정부의 감세 정책과 지출 확대 등으로 지난 2월 연방정부 월간 재정적자가 역대 최고치인 2340억 달러를 기록하고, 연간 재정적자 역시 향후 1~2년 내에 1조 달러대에 다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적자재정을 메꾸기 위한 국채 발행이 늘면서 연방정부의 부채 규모도 GDP 대비 105%를 상회하는 수준까지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다른 나라였다면 정부의 재정 운용이 방만하다며 큰 비판에 직면했을 상황이지만, 웬일인지 미국 정가나 주요 언론, 월가의 투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국의 재정 상황에 대한 큰 우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는 재정적자를 두려워하기는커녕 국가 경제를 운용하는 데 있어 재정적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소위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일명 MMT)'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MMT는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 발행국은 언제든지 화폐 발행을 통해 국가부채를 상환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적자나 정부부채 규모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정부는 조세 수입으로 부족한 돈을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을 통해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 고용 등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거의 무제한적으로 지출을 확대할 수 있다. 만약 경기부양이 지나쳐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면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이 아니라 세율 인상 등 재정정책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

최근 2020년 미 대선 일정을 앞두고 일부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이 이와 같은 MMT의 주장을 종종 입에 올리면서 이제 논란은 학계를 넘어 정치권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유력 경선주자였던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이 이론을 주요 공약사항에 원용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민주당 하원의원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진보적 정치인들이 '모두를 위한 의료보험제도(Medicare for all)', 화석연료 감축을 위한 '그린 뉴딜' 등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정책을 주장하면서 재원 마련 대책으로서 MMT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에 미치지 못하는 저물가 상황이 지속된다거나, 사상 최고 수준의 신규 부채 발행에도 불구하고 미 국채 금리가 낮은 수준에 머무는 등 주류 경제이론들이 설명하는 데 애를 먹는 현상들이 일상이 되고 있는 현실도 그간 일부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색다른 주장 정도로 인식되던 MMT가 경제이론의 전장에서 당당히 한자리를 요구하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정계에서와는 달리 학계에서 MMT 지지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MMT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특히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지출을 거두어들이거나 세율을 높일 필요가 있을 때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과연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동안 정부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늘린 국가들이 국제신인도 하락 등으로 위기 상황에 봉착했던 과거의 경험에서 왜 유독 미국만이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분명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MMT를 "현대적이지도 않고(not modern), 화폐에 대한 내용도 아니며(not mostly about money), 나아가 이론도 아니다(not a theory)"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앞으로 MMT가 새로운 거시경제 정책 패러다임으로서 시험대에 오르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중앙은행을 인플레이션 파이터가 아닌 곳간지기 정도로 취급하는 MMT가 새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현실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이정연 / 뉴욕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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