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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의 세상 보기] 테니스에서 배우는 인생

며칠 전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호주 오픈(Australian Open)이 막을 내렸다. 필자가 좋아하는 스위스의 페더러 선수가 메이저 대회 20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정현 선수가 준결승 진출에 성공하여 여러모로 흐뭇한 대회였다. 이래저래 ‘삘’을 받은 몇몇 친구들과 퇴근 후에 만나 모처럼 테니스를 거하게 치고 막 들어왔다. 우선 오늘밤엔 푹~ 잘 잘것이다. 하루 이틀은 여기저기 쑤시고 노곤하겠지만 기분은 상쾌할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꽤 오랫동안 세뱃돈 등을 모아 만든 거금 만오천원을 가지고 테니스라켓을 살까 기타(!)를 살까 고심한 적이 있다. 결국엔 학교 앞 문방구 창문에 여러 해 걸려있던 테니스라켓을 먼저 샀다. 테니스장에 발을 디뎌본 거래야 선생님들이 학교 테니스코트 흙바닥을 다져놓으라고 시켰을 때 뿐이었다. 시멘트를 채운 드럼통 롤러는 여럿이 밀고 끌어도 엄청나게 무거웠다. 그나마 쳐본 배드민턴과 탁구 중간쯤 되겠지하는 생각에 덜컥 라켓은 샀는데 배울 방법도 써볼 기회도 없었다. 그러다가 친구 한 명이 빌려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참 후에 그 녀석 집 아궁이에 타다남은 손잡이만 삐쭉하게 나와있는 꼴을 보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것인지 아직도 미스터리이다.

2013년에 <대통령과 피아노와 나> 편에서도 신세한탄을 했듯이 어린 마음에 의욕은 있었으되 여건이 않되고 시대상황이 방해를 하여 배우지 못한 것이 피아노와 테니스이다. 테니스를 익힐 기회는 왔다. 미국으로 건너와서 UC San Francisco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을 무렵 몇몇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테니스 모임을 발족했던 것이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완전초보로 끼어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게 칠 만큼의 기량은 갖게 되었다.

다른 운동도 좋은 점이 많지만 내가 테니스를 각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이 스포츠가 꼭 <인생의 축소판> 같아서이다. 초보자들이 헛갈려하는게 테니스의 점수 매기는 방법인데 축구나 농구같은 게임과는 다른 테니스만의 묘한 뉘앙스가 여기서 생긴다. 포인트-게임-세트-매치 등 승부가 다단계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인데 이게 시간으로 치면 날-주-월-년이 차곡차곡 쌓여 인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이긴 게임수로는 앞섰대도 승부처에서 못 이겨 세트를 못 따면 진다. 사람의 심리도 묘해서 한참 앞서가던 사람이 방심하거나 흔들려서 잠깐 사이에 역전당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예컨대 마지막 볼이 멈출 때까지는 승부는 나지 않은 것이다. 환상적인 샷보다는 그저 상대방코트에 마지막 공 하나를 더 넣겠다는 사람이 이기는게 테니스이다.



실수를 했을때 자꾸 연연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테니스에서도 인생에서도 No-No 인게 돌이킬 수도 없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다. 필자는 실수를 했거나 포인트를 잃으면 ‘Next ball only’를 되뇌이면서 다음 공에만 집중한다. 복식의 경우엔 팀웍도 매우 중요하다. 나도 잘해야하지만 나의 파트너가 마음 편하게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북돋아 주어야한다. 또 운동을 하다 보면 시시각각 판단하고 결정해야하므로 자연스레 빠른 판단력과 결단력이 함양된다. 요컨대 테니스는 재미있는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테니스를 하다보면 <엔돌핀> 같은 것도 잔뜩 나오는 모양이다.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가도 운동을 하고나면 ‘그래, 까짓것 다시 한번 해보자!’하며 기분전환도 되고 새로운 의욕도 샘솟는다. 혹시 어려서부터 테니스를 쳐왔더라면 (이왕이면 피아노도!) 훨씬 잘 살아오지 않았을까? 조금 있으면 늦둥이 아이가 6살이 되는데 이 아이와 같이 테니스를 치러 다니는 것이 내 작은 꿈중 하나이다.




최영출 (생명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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