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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인터뷰) 음악가족 김승순 지휘자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음악가로 매년 동포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고 있는 예멜 필하모닉 소사이어티의 김승순 지휘자는 부인에서부터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들까지 모두 음악을 하는 ‘음악가족’의 가장이다.

요즘 시대에 악기 하나쯤 다룰 줄 모르는 가족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가족 대다수가 전문 연주자이고, 일부는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경우는 드물다. 기자는 12월 초 김 지휘자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궁금증을 풀기로 했다.

-가족들이 모두 음악을 한다고 들었다. 가족을 소개해달라.
▲우리 부부는 서울대학교 음대 커플로 나는 작곡을 전공하며 성악,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두루 배웠고, 아내는 성악을 전공했다.

큰 딸(주원)은 현재 왕립음악원(RCM) 글렌우드 스쿨 첼로 교수로 많은 꿈나무들을 키우고 있다. 사위(조나단 크레이)도 RCM 교수이자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남(진원)은 오샤와 윗비법원의 검사로 일하면서 디모데교회 영어권(EM)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솜씨가 수준급이고, 작곡을 별도로 공부했다.

차남인 막내(지원)는 컴퓨터 사이언스 석사 출신의 바이얼리니스트로 현재 ‘사운드 오브 뮤직’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큰 따님의 아이들(2남2녀)도 작년 예멜의 ‘건국 60주년 기념음악회’에 출연했다고 들었다.
▲외손주들이 엄마, 아빠를 닮아서 모두 음악에 소질이 있다. 지난해 어린이합창단원으로 출연해 내가 작곡한 통일교성곡을 불렀고, 악기들을 배우고 있다.

-예멜 공연에 가족들이 거의 모두 참여한다는데.
▲11월 ‘오라토리의 밤’에서 선보인 마스네의 ‘막달라 마리아’는 시중에 악보가 없어서 속이 많이 탔었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찾아낸 CD를 들으며 악보를 채보했고, 불어 원문으로 된 합창 가사를 큰 손녀(헤나 크레이·15)가 영어로 번역하고, 내가 다시 한글로 번역했다.

대형 오케스트라 곡으로 쓰여진 엘가의 ‘사도’와 멘델스존의 ‘엘리야’도 소규모 실내악단의 각 악기에 맞게 악보를 조정하고, 영어가사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헨델의 ‘메시야’까지 총 4곡의 ‘오라토리오’ 번역 작업에만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정기연주회에서는 합창단에서 아내가 앨토, 장남 부부(진원·박세영)가 베이스와 소프라노를 맡았고, 실내악단에서는 차남(지원)과 사위(크레이)가 각각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했다. 큰 딸(주원)과 막내 며느리(이은주)만 빠졌다.

-이번 오라토리오 공연에서 감동을 받은 분들이 많다.
▲캐나다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아마 우리가 초연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장 완전을 기하면서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 예술이다. 예멜 단원들과 동포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공연하고 감상할 기회를 선사했다는데 만족한다.

-이민 초기부터 오웬사운드에서 음악교사로 25년간 재직했다고 들었다.
▲1971년 오웬사운드의 처제를 방문했다가 덜컥 이민을 결정했다. 이듬해 그곳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오케스트라를 지도하며 1973년 온주 오케스트라 경연대회에서 ‘베토벤교향곡 1번’으로 1등을 차지, 온타리오플레이스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이후 워털루대학에서 수학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25년간 7개 학교에서 음악과 수학을 지도했다.

-유난히 오케스트라를 사랑하는 것 같다.
▲어머님이 이탈리아 유학파 소프라노로 서울 시민회관에서 독창회를 갖는 등 음악활동을 했었다. 어려서부터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자랐고, 악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피아노에서 트럼본까지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 중·고등부 밴드의 들쑥날쑥하는 화음을 잡을 수 있었다. 다양한 악기의 배합으로 만들어내는 음향의 조화로운 색채가 좋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토론토 동포사회의 음악활동은 어떻게 했는가.
▲20여년간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교육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은 일찍 토론토로 나왔고, 나는 오웬사운드에 머물면서 주말에만 집을 방문했다. 그러면서 1980년에 코리안 필 하모닉오케스트라, 1986년에 캐나다한인교향악단을 창단했다. 1997년 은퇴하면서 오웬사운드를 떠나 토론토 가족들과 합류했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어려움이 많았겠다.
▲(김종옥 씨) 벨 캐나다(Bell Canada)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했다. 바쁜 부모를 둔 아이들을 하나님이 특별히 불쌍히 여기셔서 더 잘 키워주신 것 같다. 사회에서 다들 제 몫들을 맡고 있어 감사하다.

-큰 아들의 바이올린 전공을 극구 반대하셨다는데.
▲(김종옥) 음악가의 길은 솔직히 고달프다. 다른 전문직은 학위로 평생 먹고 살지만, 연주자는 악기를 놓지 않는 한 60살이나 70살에도 매일같이 연습해야 한다. 아들은 좀 편하게 살기를 바랬다. 일단 전문직을 가진 후에는 음악공부를 말리지 않겠다고 했더니, 법대 진학을 결심하더라. 검사로 활동하면서 따로 작곡을 공부할 정도로 아직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높다.

-예멜 창단의 동기도 궁금하다.
▲교직에서 은퇴하면서 모든 활동을 중단했는데, 주변에서 계속 권유를 해 1998년 5월에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포함된 ‘예멜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창단모임을 가졌다. 예멜은 ‘예쁜 메아리’ 또는 ‘예술의 메아리’라는 뜻으로 내가 41년 전 이화여고 여성 앙상블로 만든 합창단이다. 지난 2001년과 2005년에는 한국 예멜합창단의 초청으로 한국공연을 지휘했었다.

-지휘봉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가 유난히 돋보이는 것 같다.
▲하하하.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가끔 그런 말을 듣는다. 아는 사람 하나가 언젠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숨도 쉬지 못하면서 음악에 빨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라는 말을 했다. 무대에서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고 싶은 지휘자한테는 기분좋은 찬사였다.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빨간 색이 선명한 맛좋은 사과를 떠올린다.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가 아름답게 조화된 음향의 세계를 빚어낼 때 가장 행복하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그냥 음악이 좋다. 바쁜 큰 딸 내외를 대신해 외손주들을 돌보는 일상과 예멜의 지휘자로서의 현실에 충실하면서 동포들에게 새로운 곡들을 선사하겠다.

(오미자 기자 michelle@joongangcan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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