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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추남, 추녀 (秋男, 秋女 )의 가을

문학모임 전체 카톡에 가을남자가 시 한 편을 올렸다. 2006년 처음 중앙일보 문학교실의 문을 두드렸을 때 유난히 짧은 시만 고집하는 그가 눈에 띄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그것도 문학교실 개강에 맞춰 왔다 종강에 맞춰 돌아간다고 철새라고도 하고 추남으로도 불렸다. 검정 목 폴라티에 베이지 바바리가 어울려서였을까?

승마와 골프, 댄스스포츠를 즐기며 싱글이라고 주장하는 그에게 다들 애인이 있나? 없나? 한국에 부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관심들을 보였건만 그는 끝까지 나이도 신상도 비공개로 신비주의를 고수하다 한국에 빌딩을 짓고 문화사업을 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 갔다. 그 후 짧은 시로 등단을 하고 곧 한 번 가겠다는 말과 함께 문우들에게 시집을 보내 왔다. 가는 장소마다 빨간 표지로 단장한 시집을 놓고 찍은 사진을 단톡에 계속 올리더니 갑자기 소식이 끊겼다 했더니 '시월'이라는 시로 가을남자로 돌아 왔다.

'가을!' 문학소녀 시절 가을이 좋았다. 불타는 단풍도 좋았고 풍성한 과일과 열매도 좋았다. 땅에 깔린 낙엽을 밟으며 혼자 숲길을 걷기도 했고 레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낙엽'을 읊으며 무드를 잡기도 했다. 가지만 남은 나무에 몇 개씩 붙은 잎들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렸다. 낙엽 타는 냄새도 그리워 했었다.

삶의 계급장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내 안 어딘가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이 슬펐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가는 나그네의 길… 더 이상 가을이 설레지 않았다. 물기 빠져 말라가는 고목의 비틀어진 가지에서 화려함 뒤에 쓸쓸함이 깃든 가을의 털 빠진 모습을 보고 말았다.



미국에 와서 힘든 시기에 문학과 만났다. K선생님과 문우들, 세상의 어떤 모임과도 다른,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살아 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수필과 시로 등단을 한 이후에도 때로는 다른 일에 몰두하기도 하고 게으름도 피워 가며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한 적도 있었지만 뒤늦게 시작한 문우들의 일취월장하는 실력에 놀라 정신 차리고 이 가을에 다시 '시의 모드'로 들어 가 보기로 했다.

시는 고고하다.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면 돌아서서 어디론가 가 버리는 매정함으로 나를 자극한다. 시인은 지상에서 한 단계 구름 위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사람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치매에 걸리는 시인을 본 적이 있는가? 시간을 잊고 기억을 가둘 뿐 시인의 하루는 멈추지 않는다.

어디선가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들려 온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 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과 다시 친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가을은 시를 쓰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땐 그는 나에게로 와서 시(꽃)가 되었다.' 이 가을에 잊혀지지 않는 또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최덕희 / 시인·아이사랑 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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