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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역사의 기록은 숨길 수 없다

LA지역 한인 TV방송국에서 오래전 대하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백제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제목은 ‘근초고왕’이다. 근초고왕은 소국으로 나뉘어 있던 마한의 옛 나라들을 통합했다. 1800년 전 시대 상황을 극화하는데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몇 가지 미흡함을 지적한다.

이제까지 백제 왕가의 성씨를 언급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고구려는 고씨, 신라는 박·석·김씨의 왕조였고 고려는 왕씨, 조선은 이씨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백제 왕가 성씨를 부른다. 권력 투쟁이 그려지다보니 왕족들의 이름을 자연스레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외국의 다른 왕가들은 어떤 성을 썼을까.

영국의 왕가는 1917년까지 성씨가 없었다. 굳이 성씨가 없어도 문제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차 대전 중에 영국왕가는 조지 5세의 거처인 성채의 이름을 따서 ‘윈저(Windsor)’라는 성을 갖게 됐고 지금도 간혹 필요하면 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제 왕가의 성씨는 ‘부여(扶餘)’씨다. 나라 이름을 성씨로 쓴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부여구’라는 인물을 지칭할 때 ‘여구야’ '여구 왕자’라는 식으로 잘못 쓴다. 두 자로 이뤄진 성씨와 외자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겪는 일이다.

왕조가 시작될 때 백제왕도 성씨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이 성씨가 없었을 때이고 굳이 씨족 국가로 시작된 고대국가에서 이름도 없는 사람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성씨까지 필요했을까 싶다. 하지만 역사학 교수, 학자를 포함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백제 왕가의 성씨는 큰 관심사다.

백제 왕가 부여씨의 조상은 당연히 부여씨여야 해서 온조왕은 ‘부여온조’다. 그런데 온조왕은 주몽의 아들이므로 ‘고온조’여야 한다.

그러면 고온조인가 부여온조인가. 2가지 경우다.

원래 고온조였는데 나중에 나라이름을 ‘남부여’로 바꾸면서 고씨를 부여씨로 바꿨을 수 있다. 다른 경우는 10대 분서왕 이후에 집권한 11대 비류왕이 역성혁명을 했을 수 있다는 것. 역사에는 6대 구수왕의 직계인 아들로 나오는데 나이 차이가 90년이나 나서 학자들은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이를 숨겼다.

또 ‘고온조’를 사실은 ‘해온조’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왜냐하면 주몽은 고씨가 아니고 해(解)씨라고 본다. 해모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주몽의 왕가는 5대 모본왕 시절에 위기를 맞는다.

고구려 6대 태조왕이 고씨라는 것을 감안해보면 ‘거의’ 역성혁명이나, 부여출신 유력 집안에 양위했거나 아니면 후사없이 멸절돼 유력한 고씨가 왕권을 차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모본왕이 악정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이 이런 격변을 시사한다. 그러면 왜 고주몽이라고 부를까. 고씨 왕조 입장에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주몽에게 고씨를 추존한 것이다. 또 숨겼다.

예전과 달리 현대인들은 기록으로 기억한다. 시시각각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지금 몇몇 사항을 숨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역사를 속이는 일은 어렵다. 모든 저장장치를 파괴하지 않는 한 현대문명은 모든 것을 기록할 것이다.

중국 주나라가 은나라를 땅에 묻을 수 있었지만 21세기에는 불가능하다. 시대에 역행하는 모든 독재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대대손손 남을 텐데 역사가 두렵지 않은가.


장병희 / 기획콘텐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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