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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그 후] 이한탁 석방, 생면부지 인연이 빚어낸 감동스토리

신동찬 / 사회부 차장

#. 1993년 뉴욕시 소방국(FDNY) 출신 화재 감식 전문가 존 렌티니 박사는 CBS방송의 유명 시사 프로그램 ‘60 Minutes’ 측으로부터 한 방화 살인사건의 수사와 재판 자료 검토를 의뢰받는다. 사건은 1989년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의 한 교회 수양관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소방국에서 화재 감식과 방화 수사관으로 일하고 현재 미국 화재 수사 연구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그는 그렇게 이한탁씨와 인연을 맺었다.

그가 당시 이씨의 옷에 묻은 발화물질이 현재의 검출·분석 방식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보고서는 이씨 재판의 결정적 반전을 이끈 증거가 됐다.

#. 1999년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한인 캐서린 정(한국이름 정방환)씨였다.



그의 남편은 이씨 구명위원회 손경탁 위원장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국영씨. 전화를 걸기 얼마 전 남편과 한국의 한 시사 방송을 통해 이씨 사연을 접했던 정씨는 재판을 맡길 변호사를 찾고 있었다.

“이씨 사연을 보고 남편과 무척 애타했습니다.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당장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아야 했지요. 필라 지역의 법률 잡지를 뒤져 변호사 몇 분에게 전화를 했는데, 5만 달러에서 7만 달러를 수임료로 요구했어요. 그런데 이 변호사는 서류 검토 작업을 담당할 직원 급여로 700달러만 달라고 하더군요. 그 정도면 내 주머니에서도 줄 수 있는 돈이잖아요…” 당시 펜실베이니아주 연방 법조계에서 유죄 평결 항소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피터 골드버거는 이씨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정씨의 전화 한 통화로 이씨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한탁 사건은 생면부지의 인연들이 빚어낸 기막힌 감동스토리다. 이씨와 아무런 관계도 없던 렌티니 박사와 골드버거 변호사는 이씨 사건의 주역이자 은인같은 존재다. 두 벽안의 은인은 이씨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와 증인으로 만나 또 다른 인연을 맺었고 그들의 집념은 이씨가 교도소에서 풀려나는 ‘기적’을 만들었다.

렌티니 박사는 이씨 사건을 “경험한 재판 가운데 가장 억울한 판례”라며 지난 20여 년 동안 이씨의 무죄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믿음은 예일 법대 출신의 손꼽히는 항소 전문 변호사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지난 2006년에는 잊혀져가던 이씨 사건이 주류사회의 이목을 끄는 일이 일어난다. AP통신이 이씨 사건을 기사화한 것이다. AP는 당시 새롭게 진화된 방화수사 방식이 억울한 누명을 쓴 수형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기사를 통해 이씨 사연을 소개했다. 이 기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전국 곳곳에 전해졌고 이씨 사건에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됐다.

AP통신에 이씨 사건을 제보한 장본인이 바로 렌티니 박사다. 그는 당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씨는 영어를 못하는 소수계 이민자라는 이유로 미국 언론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며 “지금은 언론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다. 그래서 AP에 제보했다. 판사를 움직여 이씨 사건이 재심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길은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었다.

렌티니 박사가 뒤늦게 언론의 도움을 요청한 건 그만큼 긍정적 여론 조성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2006년은 이씨 측이 연방법원에 항소를 제기하기 전이다. 펜실베이니아주 법원에서 계속 이씨의 항소를 기각시키고 있을 때다.

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렌티니 박사를 이씨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시킨 CBS의 ‘60 Minutes’은 93년 당시 이씨 사건에 대한 방송을 제작 단계에서 포기해야 했다. 뉴스 프로그램 특성상 가족의 인터뷰가 담겨야 하는데, 이씨 가족이 이를 원치 않은 것이다.

CBS는 당시 이씨 재판이 졸속으로 진행된 정황을 간파하고 렌티니 박사에게 자료 검증을 부탁한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딸을 잃고 가장마저 살해범으로 몰려버린 상황에서 이씨의 부인 이정선씨로서는 그 아픈 상처를 언론에 나와 보인다는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우연하게, 또 필연적으로 맺어진 인연은 20여 년을 이어왔다. 그리고 진실을 감추고 있던 누명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냈다. 여기까지 오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두 벽안의 은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들을 통해 이 세상에 정의가 있음을 믿게 된다”고 말이다.

shin73@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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