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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무덤 앞에서의 단상

하와이 최남단의 섬 '빅아일랜드'를 다녀왔습니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인 '코나 커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이민자들의 애환이 서려있던 사탕수수밭은 이제 커피 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미주중앙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아 취재수첩을 들고 한인 이민자들이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섬 곳곳엔 한인 이민 선조의 무덤이 남아있습니다. 무덤은 흔적입니다. 100년이 넘는 한인 이민 역사를 덤덤하게 담아내는 발자취였습니다.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코나의 바닷바람이 잔잔히 부는 교회 마당 앞에는 수십 개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묘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중엔 한국인의 이름도 여럿 보였습니다. 이끼가 잔뜩 낀 탓에 묘비에 새겨진 성씨와 사망연도, 십자가 문양 등은 흐릿해졌지만, 한인들의 무덤이라는 사실까지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고요한 무덤 앞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질문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너무나 외롭고 힘겨웠을 이민자의 길을 그들로 하여금 묵묵히 참아내며 걸어가게 했던 이유 말입니다. 그들이 묻힌 교회가 질문에 대한 답을 짐작게 했습니다. 그건 '신앙'이었습니다.

한인 이민 역사는 교회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초기 이민자들에게 신앙은 삶의 버팀목이었습니다. 1903년 1월, 하와이 땅을 맨 처음 밟았던 한인 이민자의 다수는 기독인들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개월 후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가 세워지면서 미주 최초의 한인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신앙의 열정은 후세를 위한 유산이 됐습니다. 미주 한인 사회가 교회를 중심으로 태동하게 된 기틀이 됐습니다. 당시 교회가 개인과 사회에 미친 영향과 역할은 상당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큰 의미였던 겁니다.

무덤 앞에서 오늘날 교계의 모습을 투영해봤습니다. 한인 교계는 그간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지금은 무려 4000여 개 이상의 한인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미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한인 교회를 찾는 게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성장과 성숙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숫자적으로나 규모 면에서는 발전을 거듭했지만, 오히려 교회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축소됐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과거 이민 선조들의 삶과 동행하며 역사를 썼던 교회가, 지금은 한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신뢰도와 역량은 있는지 한번쯤 돌아봐야 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교회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이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꼭 큰 건물이나 교세 같은 유물론적 형태만이 유산은 아닐 겁니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한인교회의 존립과 존재 목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앞으로 이민사회 내에서 교회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무덤에 눕게 됩니다. 언젠가 그 앞에 후세가 섰을 때 전해줄 수 있는 답은 지금부터 준비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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