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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어떤 고양이도 쥐의 권리를 대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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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4/11 07:25

이소영/언론인

가끔 머릿속이 멍해질 때가 있다. 난독증을 의심할 만큼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만의 해법은 책을 덮고 글 대신 그림을 보는 것이다. 그날도 이래저래 머릿속이 시끄러웠던 오후, 나만의 비상구가 필요했다. 종종 국회도서관 자료실에서 새로 나온 책이나 신문을 읽곤 했는데 그날따라 동화책이 가득한 어린이방에 가고 싶었다. 알록달록 예쁜 그림책으로 안구정화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친절한 쌤 사회 첫걸음, 정치(사진)’를 발견했다. “정치가 뭐예요?”라는 단순한 물음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세계인 것만 같은 정치를 이 책은 사회 갈등을 풀기 위한 모든 행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가벼운 그림책이라 생각하고 책장을 술술 넘겼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마치 어른을 위한 알기 쉬운 정치 입문서 한 권을 속독한 느낌이 든다.

“갈등이 생겼을 때는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 의원들이 법을 만들고, 정부가 법에 따라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해요. 그리고 법원은 재판하고, 경찰과 주민센터 등 수많은 기구를 만들어야 해요. 이처럼 사회를 잘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행동을 ‘정치’라고 해요.” <소피 드 망통, 알렉시아 델리외의 ‘친절한 쌤 사회 첫걸음: 정치편’ 본문 중>

책에서는 정치가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지, 정치를 왜 알아야 하는지를 흥미로운 일러스트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이름들이지만 막상 무슨 일을 하는지는 막연한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들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다.
누군가 나에게 국회의사당이 뭐 하는 곳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수십 번 고민하게 된다. 모르는 것은 아닌데 입 밖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머릿속에 단어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정치를 이렇게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정치는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있었다. 어렸을 때 학급 반장을 뽑으면서 우리는 이미 투표를 경험했고, 학급회의에서 어디로 소풍을 갈지 결정했다. 이 모든 과정이 상정, 토론, 의결이다.

캐나다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는 1962년 의회 연설에서 ‘마우스랜드’를 소개했다. ‘마우스랜드’는 생쥐들이 모여 사는 나라인데, 그들도 우리가 사는 사회처럼 5년마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다. 그런데 그들이 뽑은 지도자는 생쥐가 아니라 매번 고양이였다. 삶이 피폐해져도 생쥐들은 여전히 색깔만 다른 고양이를 뽑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리의 생쥐가 홀연히 나타나 외쳤다. 이제부터는 생쥐 가운데서 지도자를 뽑아보자고. 그런데 생쥐들은 이를 환영하기는커녕 그 생쥐를 ‘빨갱이’라며 도리어 감옥에 가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해도 변하지 않는 국민의 고단한 삶을 풍자한 내용이다.

이제 또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당장 내일 모레면 4년 동안 한국 국회에서 일할 지역 일꾼이 선출된다. 나 또한 중앙선관위에 국외부재자 신고를 하고 일찌감치 재외국민 투표를 마쳤다. 내가 사는 곳은 버지니아인데 굳이 한국 국회의원 선거까지 투표해야 할까. 귀찮은 마음이 먼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귀찮음 때문에 고국 정치를 외면했다가 또다시 생쥐를 잡아먹는 고양이가 뽑히게 될까 두려웠다.

우리가 뽑는 국민의 대표가 고양이일지 생쥐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생쥐들의 마음속까지 꿰뚫어보는 듯 진솔해 보여서 국회로 보내놨더니 결국 고양이였을 수도 있다. 이번만큼은 내 손으로 뽑은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듬직한 생쥐 대표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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