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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삼바가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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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5/17 12:58

이소영/언론인

이주민, 체류자에 관한 이야기는 미국 땅에 사는 나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역경을 이겨낸 책 속의 주인공 못지 않게 내 주변 많은 이웃 또한 험난한 여정 끝에 이 곳에 와 있다. 이곳은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다. 저마다 찬란한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고국을 떠나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소설 ‘웰컴, 삼바’(사진)의 주인공 삼바 시세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프리카 말리에서 태어난 삼바 시세는 건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른 나라, 프랑스’를 꿈꾼다. 말리에서부터 프랑스로 오는데 꼬박 1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후 10년 동안 일을 하고 세금을 내며 프랑스의 일원이 되었다.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체류증을 얻으러 간 날, 삼바는 그 자리에서 경찰에 체포된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풀려나지만, 프랑스 당국의 결정은 ‘자발적 귀국’이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삼바가 프랑스에 남는 방법은 숨어 지내는 것뿐이다. 삼바는 처음에는 동거하는 삼촌의 이름을 빌려 쓰고, 여의치 않게 되자 남의 신분증을 훔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그의 삶은 현실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부정적으로만 정의되었다.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다’.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는 백인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를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었다.
<델핀 쿨랭의 ‘웰컴, 삼바’본문 중 >

부정의 존재가 프랑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음성적일 수밖에 없다. 일하는 중에도 단속 경찰이 들이닥치면 도망가야 하고 매장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다시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채용이 안 되는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프랑스 경제 전체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쓰기 편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들은 지하 프랑스에서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류하고, 밤에 사무실 바닥을 청소했다. 프랑스를 사랑하면서도 프랑스 시민은 될 수 없는 삼바가 도망자 신분으로 다시 살 길을 찾아 나서는 결말은 관용의 나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삼바의 사연은 가슴 아프다. 그렇지만 특별하지는 않다. 불법체류자 대다수가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체류자들의 신분을 결정하는 이민국에서는 사연이 아니라 증명 서류를 본다. 한 사람의 일생이 서류 몇 장으로 압축되는 것이다. 체포되는 순간에도 삼바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항의하자 담당 직원은 ‘이해할 필요 없다’고 차갑게 내친다. 역설적이게도 인권수호 가치를 내세우는 프랑스에서, 그들의 요구에 맞지 않았을 때 삼바는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프랑스가 아닌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와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식당에 가면 다양한 나라에서 건너온 종업원을 만날 수 있다. 건설현장, 청소업체, 공장에서도 세계 각국 출신의 노동자들이 궂은일을 담당하고 있다. 소설 ‘웰컴, 삼바’는 이처럼 지구촌이 공통으로 고민하는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국의 생존게임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쿡 아일랜드’에서 최종 우승한 한인 2세 권율은 이런 말을 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모두에 기회가 주어지지만 승자만이 성공을 독식한다.”

삼바가 꿈꾼 프렌치 드림도 비슷했다. 프랑스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승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웰컴, 삼바’ 책 표지는 프랑스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내면서 분주히 뛰어다녔을 그의 발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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