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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살인마의 아들로 지내온 ‘7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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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6/13 08:36

이소영

‘한 남자는 딸의 복수를 꿈꾸고, 한 남자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 한다.’ 이 책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유정의 장편소설 ‘7년의 밤’(사진)이다.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하고, 여자아이의 아버지를 몽치로 때려죽이고, 자기 아내마저 죽여 강에 내던지고, 댐 수문을 열어 경찰 넷과 한 마을주민 절반을 수장시켜버린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 그 광란의 밤에 멀쩡하게 살아남은 아이.’ 책장을 몇 장 넘기자마자 이 끔찍한 설정이 등장한다. 초반의 강한 흡입력은 책을 완전히 덮을 때까지 이어진다.

‘세령호의 재앙’이라 불리는 이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두 살 서원. 세상은 그에게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친척 집을 전전하던 끝에 결국 모두에게 버려진 서원은 세령마을에서 한집에서 지냈던 승환을 다시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학교를 옮길 때마다 세령호 사건이 실린 잡지가 학교에 배달됐고, 서원은 열두 번의 전학 끝에 중학교를 자퇴하고 승환에 의지해 도망자의 삶을 산다.

세령호 사건 후 7년, 세간의 눈을 피해 살던 서원과 승환은 야간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청년들을 구조하게 되고, 이 일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서원은 누군가로부터 한 편의 소설을 배달받는다. 7년 전 그날 밤의 사건을 낱낱이 기록한 ‘세령호’라는 소설. 이로 인해 오랜 기간 수면 아래 잠들어있던 진실은 7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서원은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7년의 밤’은 살인자의 아들로 살면서 늘 도망 다녀야 했던 서원의 과거를 거슬러 가면서 시작한다. 서원과 아버지 현수, 죽은 딸의 복수를 꿈꾸는 영제, 댐 경비원 승환이 각각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날 밤에 대한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다인칭 설정이다. 소설은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하던 현수, 술집 작부인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 더 억척스레 살아온 현수의 아내 은주, 높은 학식을 갖췄지만, 아내와 딸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영제. 모두 어릴 적 갖지 못했던 견고한 가족의 울타리를 짓기 위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무던히 노력하지만 현수와 영제는 끝내 울타리 짓기에 실패한다.

울타리 짓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지어야 튼튼하고 건강한 가족의 울타리가 되는지 몰랐다. 현수와 영제가 가정폭력을 대물림하는 모습은 슬프게도 너무나 현실적이다.

이처럼 왕따 문제에서부터 가정폭력, 살인을 차례로 등장시키면서 사회소설로 시작해 스릴러, 추리 장르까지 변신을 거듭한다. 그런데도 산만하지 않은 이유는 이야기 얼개가 촘촘하고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소설 안에 보이는 현실상은 씁쓸한 현재와 닮아있다. 아동학대와 살인은 과거에도 꾸준히 일어났던 일인데 최근 들어 부쩍 이목이 쏠리는 것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건이 더 자극적으로 기사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기사는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국민적 공분은 여론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중은 늘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해왔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 또한 늘 피해자의 입장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소설 ‘7년의 밤’은 ‘세령호의 재앙을 가져온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가 아닌

‘그는 왜 살인을 해야 했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이 소설의 힘은 현수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날의 재앙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방점을 찍은 데에 있다.
‘7년의 밤’은 현재 영화로도 제작 중이다. 내년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에서는 과연 살인범 현수가 아버지로서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원작과 영화의 서로 다른 매력을 비교해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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