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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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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7/03 16:01

연을 쫓는 아이

연을 쫓는 아이

아프가니스탄 소설이라고 하면 당연히 핏빛 가득한 전쟁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했다. 몇 장 넘기지 않아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 속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은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미국으로 건너와 영어로 쓴 소설 ‘연을 쫓는 아이’(사진)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지만,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주눅 든 주인공 아미르, 외로운 아미르 곁을 지키는 하인이자 친구인 하산, 그리고 하산의 아들 소랍과의 관계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안타까운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던 문구이다. 소설 초반에 아미르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하산이 이 말을 하고, 결말에는 반대로 아미르가 하산의 아들인 소랍에게 이 말을 한다.

‘연을 쫓는 아이’라는 책 제목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소설에서 ‘연’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분을 뛰어넘어 우정을 유지하던 동갑내기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가 틀어지는 결정적 사건이 연날리기로 비롯됐고, 수십 년 후 화해의 매개체 역시 연날리기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소설은 계급을 뛰어넘은 두 소년의 따뜻한 성장기로 보인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생각하면 책의 의미가 달라진다. 군주제가 붕괴한 뒤 이어진 소련의 침공 그리고 탈레반 정권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격변했던 아프가니스탄의 근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소설 곳곳에는 ‘나치’와 ‘탈레반’, ‘쇠주먹’을 연결하는 정치적 상징들이 숨어있다.

하산이 동네 불량배들에게 성폭행당할 때 아미르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홀로 죄책감에 시달릴 뿐이다. 여기서 힘없는 하산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현실을 외면한 아미르는 일찍이 고국을 떠난 망명자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은 ‘성폭행’당하고 있었고 망명자들과 주변 세계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이 소설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의 참혹한 역사가 남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전쟁을 겪었던 우리나라의 옛 모습이 책 속에 그대로 들어있다. 호세이니 작가가 묘사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은 척박하다. 전쟁이 계속되는 모진 세상, 종교 갈등에서 일어나는 싸움, 탈레반 지배 후 구습을 없애려는 폭력 등의 이야기들은 60여 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상황과 너무 닮아있다. 아프가니스탄 사회의 엄격한 계급 구분은 과거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양반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지배층인 ‘수니파, 파쉬툰인’과 천대받는 ‘시아파, 하자라인’로 구분된 탓에 아미르와 하산은 친구이면서도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우리나라식으로 치면 도련님과 머슴의 우정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남은 전쟁의 상흔은 아직 여전하다. 한국전쟁이 불과 3년이었음에도 휴전 후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 여전한 것을 보면 아프가니스탄의 상흔이 쉽게 가실 것 같진 않다. 우리에게 아프가니스탄은 위험하고 혼란한 곳으로 각인돼있다.

한국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한 분쟁지역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은 많은 사람에게 폐쇄적인 이슬람 공화국, 연쇄 폭탄 테러를 일삼는 폭력의 나라라는 인상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그런 곳에서도 사람들은 삶을 계속하고 있다. 소설이 말하고 싶었던 내용도 국가와 인종, 종파, 계급을 막론하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 메마른 땅에도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연을 쫓는 아이’를 읽는 내내 아프가니스탄과 그곳의 사람들이 내게는 찡하게 다가왔다. 위험한 편견을 깨기에는 한 권의 책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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