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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빛나라, 순자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7/18 06:31

평화로워 보이는 한 가정. 아침에 엄마는 가족들을 깨우고 딸아이 유치원에 보낼 간식 도시락을 싼다. 아내의 모닝 키스를 받고 출근한 아빠는 퇴근 후 아이와 그림 놀이를 하면서 일과를 묻는다.

한국인 아내와 영국인 남편 사이에 인형 같은 딸 하나를 둔 국제부부이다. 블로그에서 이 가족의 일상을 엿본 지가 일 년 좀 넘었나 보다. 부부가 한국도 영국도 아닌 쿠웨이트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상이 흥미로웠다. 국제부부라면 이곳 미국에서는 아주 흔한 모습이라 이 부부 역시 사소한 문화 차이로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가는 듯 보였다.

특별할 것 없이 단란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아내 순희 씨가 쓴 인터넷 블로그 글들은 춥춥한 느낌이 짙었다. 순희 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꽤 깊게 우울증을 앓아왔다. ‘순자 이야기’(사진)는 블로그에 털어놨던 이야기, 우울증과 싸워온 그간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피자를 주문하면서 갈릭소스를 빠뜨렸다는 이유로 펑펑 눈물을 쏟는 그녀다. 때때로 감정조절장치가 제멋대로 움직여서 이유 없이 슬펐다가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혼자 동굴을 파고 들어가 마음속 고름이 짓물러 터질 때까지 문을 열지 않았다.

남편 폴은 격변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처음 몇 번은 그랬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계속되면서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가족 모두가 힘들어졌다. 그런 그녀가 필명 ‘순자’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천둥 번개가 치던 마음은 잠잠한 봄 바다로 바뀌었고 엄마가 편안해지자 딸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지순희 작가는 구멍이 많은 마음을 가진 엄마 안에서 추운 날이 더 많았을 딸에게 해주고픈 이야기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다.

“이 엄마는 감정을 제 맘대로 잘 조절하지 못하는 병이 있을 뿐 결코 너를 미워하거나 원망한 적은 없노라고. 할 수만 있다면 내 몸과 정신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빨고 삶아서, 햇빛 쨍쨍한 곳에 널어두어 빳빳하게 말리고 싶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너에게만은 최고의 엄마가 되고 싶다고.” -지순희의 ‘순자 이야기’ 본문 중-

그동안 순자는 아주 아팠다. 부모님은 늘 싸웠고 결국 아버지는 가족들 곁을 떠났다. 엄마는 외롭다, 죽고 싶다 말하며 울었다.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먼 이 집안에서 그녀는 늘 마음이 시렸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순자가 가정을 꾸리고 딸을 낳은 이후에도 계속 괴롭혔다.

마음의 병을 고백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용기 내 상처를 드러내고 보니 한결 가벼워졌다고 말한다. 여러 모양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랐고 그들이 한마음으로 괜찮다고 등을 두드려주는 것에 힘을 얻었다.

들여다보면 집집이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겠는가. 크기와 색깔의 차이가 다를 뿐 누구나 마음속에 우울 덩어리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이다. 우울과 걱정, 이 두 가지는 서로를 계속 자극해서 불쑥 커졌다가 작아졌다가를 반복한다. 다만 스스로 자각을 하느냐 못하느냐, 치료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순자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완치될 수 없는 우울증은 앞으로도 그녀를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순자는 어린 시절 상처를 핑계로 피해자 역할만 했던 자신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함께해왔던 우울증약을 끊고 이제 30년 묵은 묵직한 우울 덩어리와 정면 승부하려고 한다.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밝고 따뜻한 어른으로 한 뼘 더 성장하기를. 이 가족의 해피엔딩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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