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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사실과 진실 사이의 ‘루머’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8/08 10:52

이소영

최근 해외 원정 성매매 당사자로 지목돼온 한 연예인은 ‘댓글을 보다 보니 내가 몸을 판 여자가 된 것 같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근거 없는 악성 루머와 함께 여성 연예인의 실명이 거론되자 해당 연예인들이 루머의 발원지를 찾아달라고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사건의 발단은 증권가 찌라시였다. 누군가의 입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써서 유통하는 순간 소문은 사실이 된다. 사실과 진실은 엄연히 다르지만, 대중에게 그 차이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제이 아셰르 작가가 쓴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추문을 못 견디고 자살한 해나의 이야기이다. 클레이는 보낸 사람을 알 수 없는 소포를 받게 된다. 소포는 놀랍게도 2주 전에 자살한, 그가 짝사랑했던 해나 베이커의 목소리가 담긴 7개의 녹음테이프였다. 해나는 자기 죽음과 관계가 있는 열세 명에게 이 테이프를 듣게 했다.

그리고 직접적 원인이 된 친구들을 하나씩 지목하며 옛일들을 들춘다. 이야기는 해나의 첫 키스에 대한 루머에서 시작한다. 단지 첫 키스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루머는 해나를 헤픈 아이로 만들어버렸다. 친구들은 해나를 삼각관계 틀에 넣어버리고 수군거렸다. 해나는 꾸준히 자신만의 신호를 보내면서 친구나 선생님이 도와주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뿐이었다.

책은 해나의 목소리와 클레이의 생각을 오가며 진행된다. 클레이는 짝사랑했던 해나를 구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동시에 해나가 자신에게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힘듦을 표현했더라면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책의 목차 또한 독특한데, 해나가 죽은 뒤 배달된 7개의 테이프 앞 뒷면을 차례로 듣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있지만, 귀로는 해나의 이야기를 듣는 듯 생생하다.

제이 아셰르 작가는 한국판 에필로그에서 “루머는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마음에서 출발하며 루머 유포자 대다수는 희생자를 해하려는 악한 의도는 없었다”고 말한다. 해나가 겪은 일 역시 첫 키스에 대한 소문이 여러 사람 입을 타고 전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버전이 양산됐고 가장 인기 있는 버전은 친구들 입을 거쳐 가공된 자극적인 야설 수준이었다. 진실은 해나가 헤픈 아이가 아니었으며, 삼각관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이상한 리스트에 오른 것은 그녀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루머가 퍼질 대로 퍼진 이후에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인생 한 부분을 망가뜨리면 너희들은 한 부분만 망가뜨린 게 아니야. 불행하게도 너희들은 정확하고 선택적으로 망가뜨릴 수는 없어. 한 부분을 망가뜨렸으면 삶 전체를 망가뜨리는 거야. 모든 것은…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지.” -제이 아셰르의 ‘루머의 루머의 루머’ 본문 중 -

책을 읽으면서 고(故) 최진실 씨가 떠올랐다. 25억 사채설이 없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연예인은 물론이고 일반인에게까지 번진 루머와 악플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에 대해 모두가 문제라고 말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것을 없앨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SNS의 발달에 힘입어 루머는 오히려 또 다른 방식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루머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루머와 악플은 사회악이라고 입을 모아 외치면서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정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정보가 돈이 되는 매체, 또 그것을 궁금해하는 대중의 끈끈한 연결고리가 너무나 견고해서 쉽게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 또한 반성한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엿본다는 희열과 관음에 중독돼 나도 모르게 루머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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