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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강박증에 대처하는 자세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8/29 07:52

이소영 /언론인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보통 온화한 표정을 짓고 환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차분한 아저씨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사를 기대하고 있다가 정반대로 정신없는 모습의 의사를 만난다면 과연 그 의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

오쿠다 히데오 작가가 쓴 소설 ‘공중그네’(사진)에는 괴짜 의사가 등장한다. 도쿄의 유명 병원인 이라부 종합병원장의 아들, 주인공 이라부이다. 부유한 집안의 차도남일 것 같은 배경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겉모습으로 봐서는 동네마다 한 명씩 꼭 있다는 오지랖 주책바가지 아저씨처럼 보인다. 산만한 덩치에 접힌 턱, 목소리는 모깃소리처럼 앵앵거린다. 거기에다 이라부의 진찰실은 병원 지하방이다. 왠지 병을 고치러 갔다가 병을 달고 나올 것만 같은 이곳의 이야기다.

환자보다 더 환자 같은 괴짜 정신과 의사가 강박증에 시달리는 다섯 환자를 치료해가는 과정이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 전개된다. 칼끝이나 예리한 물건을 보면 공포심을 느끼는 선단공포증을 앓는 야쿠자에게 이라부는 다짜고짜 거대한 주사기를 들이댄다. 공중그네에서 자꾸만 실패하는데 주눅이 든 곡예사에게는 자신도 공중그네를 타보고 싶다는 엉뚱한 말을 한다. 노력한 만큼 성공이 뒤따르지 않자 글을 쓰는 일이 불안해진 여류작가에게는 자신을 데뷔시켜달라며 원고지를 내밀기도 한다. 그리고 어리고 잘생긴 신입 선수에 대한 질투로 슬럼프에 빠진 야구선수, 근무하는 병원의 원장이자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젊은 의사가 이라부의 병원을 찾는다.

환자들이 다양하듯 그들이 호소하는 강박증의 종류와 이유도 제각각이다. 환자들이 겪는 증상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섯 명의 환자들을 내세워 현대인들의 가식, 자신도 모르게 외부를 향해 높이 쌓아 올린 벽, 자신을 갉아먹는 시기와 질투, 성공을 위해 희생되는 삶의 가치들을 되돌아 보게 한다.

이때 정신과 의사 이라부의 처방은 기상천외하다. 환자에게 비타민 주사 한 대를 놓고 대화를 시작한다. 환자들의 생활상을 관찰한다는 핑계로 육중한 몸으로 공중그네 서커스에 도전하고, 야쿠자들의 칼부림 현장에서 천진하게 갖은 훈수를 두기도 하며, 일탈 충동에 시달리는 환자와 의기투합해 도로 표지판을 슬쩍 바꿔놓기도 한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의사의 자질을 의심한다. 하지만 이내 이라부가 주는 편안함에 마음의 문을 연다. 그들이 겪고 있는 마음의 병은 사회가 정한 틀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비롯된 것인데 의사 이라부에게서는 그런 틀에 박힌 모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차려입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의사의 모습에 오히려 위안을 얻었는지 모른다.

절대 가볍지 않은 정신과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다. 기행에 가까운 이라부의 행동에 실소를 흘리다가도 어느새 의사와 환자의 진솔한 대화에 공감하게 된다. 그것이 고도로 계산된 치료과정 중 하나인지, 아니면 제멋대로 행동하는 와중에 하나가 맞아 떨어져서 치료 효과를 보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진실이 무엇이든 이라부의 행동은 책 속에 잘 스며서 ‘내 고민과 불행은 어디서 온 것일까’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결국, 이라부의 환자들은 자신을 보살피는 법을 깨닫게 된다. 누구의 도움 없이 오직 이라부의 천진한 행동에 영감을 얻는다. 작품 속 이런 설정이 와 닿는 이유는 우리가 겪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뿐이라는 진리 때문이다.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라부의 캐릭터에 그대로 드러난다. ‘솔직하고 단순하게 살라’는 것. 우리는 보통 그런 사람을 물색없는 주책바가지로 인식하기 마련이지만 좀 주책스럽게 보이면 어떠랴. 정체 모를 가면을 쓰고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는 이라부와 간호사 마유미의 찰떡 호흡을 감상하는 데 있다. 사계절 내내 가슴골과 넓적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간호복을 입는 마유미는 이라부 의사만큼이나 독특한 인물이다. 평범하지 않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웃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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