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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미래를 살다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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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9/19 07:16

이소영

‘10년 전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라마.’ 소설 ‘궁극의 아이’(사진)는 이 짧은 편지 한 장으로 시작한다. 14대 달라이 라마와 9.11테러에서 모든 것을 잃은 FBI 요원 사이먼 켄에게 10년 전 소인이 찍힌 편지가 배달된다. 신가야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보낸 편지였다. 이 편지가 배달된 날부터 닷새 동안 한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가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인류 평화를 위해 마땅히 죽어야 하는 인물이지만 만약 살인을 막고 싶다면 엘리스를 찾아가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기억 속에 모든 단서가 들어있다고.

실제로 워싱턴 한복판에서 세계 곡물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기업 총수가 암살된다. 그리고 또 다른 거물들이 차례로 죽어 나간다. 용의자는 10년 전 자살한 신가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FBI 요원 사이먼은 그가 편지에 남긴 대로 과거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엘리스를 찾기 위해 사건 속으로 뛰어든다.

주인공 신가야에 대한 설정이 흥미롭다. 이미 10년 전 이 살인을 구체적으로 예고한 신가야는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가난한 좀도둑에 불과했던 신가야는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미국으로 들어와 거대 세력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미국에서 엘리스를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눈 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 책의 제목 ‘궁극의 아이’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기원전 26세기 고대 이집트 왕 쿠푸의 무덤에서 열일곱 살 소년의 석관이 발견된다. 석판에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아이’라는 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쿠푸왕은 이 아이의 능력을 이용해 영토를 확장하고 이집트를 전성기로 이끈 왕이었다. 훗날 이 석상을 발견하고 돌아가던 미국의 고고학자는 똑같이 생긴 아이를 보게 되는데 그 아이에게도 똑같은 신비한 능력이 있었다.
기원전 26세기 인물이 어떻게 눈앞에 서 있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환생해서 능력을 이어온 아이는 인종과 국가, 성별, 나이를 초월해 태어나지만, 이들은 모두 검은색,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오드아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심지어 지문과 치열까지 같다. 미래를 기억하는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로 잰 듯 정확히 기억한다.

아이의 엄청난 능력이 알려지자 검은손이 모여들었다. 세계 정치와 경제를 주무르는 거물들은 아이가 기억하고 있는 미래를 이용해 전쟁을 일으켰고 피 묻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 사이 많은 사람이 조종당했고 죄 없이 죽어 나갔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궁극의 아이를 찾아 계속 이용할 수 있게끔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지문조회시스템 안에 특별한 코드를 심어두기도 했다. 검은 세력의 악행을 멈추기 위해 궁극의 아이는 복수를 계획한다. 그 아이가 바로 신가야 이다.

“미래를 본다는 건 강물에 흘러간 책을 모으는 것과 흡사하다. 어떤 부분은 휩쓸려 가고, 어떤 부분은 번져 읽을 수가 없지. 중요한 건 클라이맥스를 찾았다고 섣불리 결말을 예상했다간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거야. 한번 발을 헛디디면 그 아래는 상상 이상의 심연이 기다리고 있어.” -장용민 작가의 ‘궁극의 아이’본문 중-

신가야는 자신과 딸에게 닥칠 미래를 알기에 사랑하는 엘리스를 떠나야 했다. 반면 그가 사랑한 엘리스는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자다. 잊고 싶은 일들마저 하나도 잊지 못하고 기억 속에 저장해두고 살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마치 저주 같은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10년의 세월이 얽힌 퍼즐 조각을 FBI 요원 사이먼이 하나씩 맞춰가면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신가야가 자살을 선택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또 엘리스의 기억 속에 무슨 열쇠가 있는 것일까. 이 두 가지 질문이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관통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방금 롤러코스터를 탄 듯 아찔함마저 느낀다.

잘 짜인 추리소설 같다가도 궁극의 아이가 복수하는 과정은 인간의 추악한 탐욕과 돈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철학서 같다. 특히 돈이 권력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날카롭다. 9.11테러,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등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 역시 사실감을 더하는데 그래서인지 장용민 작가가 제기한 ‘그림자정부’설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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