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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사는 게 뭐라고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9/26 06:54

이소영/언론인

40세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 불혹(不惑)이라 말하고 50세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이라 부른다. 60세는 귀가 순해진다는 의미의 이순(耳順), 70세의 다른 이름은 종심(從心).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떻게 살아야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살아낸다는 것은 득도의 과정과도 같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가 보다.

여기 종심의 할머니가 써낸 고군분투 생활기 한 편이 있다. 사노 요코 작가의 ‘사는 게 뭐라고’(사진)이다. 늙어감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담은 일기이다. 세상을 오래 산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이렇게 살아라”, “이런 건 절대 하지 말아라.” 같은 훈계는 없다. 다만 작가가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함께 생각하게 한다.

사노 요코 작가는 발랄하고 엉뚱한 매력을 가진 할머니다. TV 요리 프로그램에 ‘꽁치 오렌지 주스 영양밥’이 소개되자 토할 것 같은 음식이었다고 고개를 흔들면서도 기어이 정체불명의 음식을 따라 만들고 만다. 얼마나 끔찍한 요리인지 어디 한번 먹어나 보자는 심산이었다고 한다. 욘사마에 빠진 이후로 한류드라마 DVD를 사들이는 데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브라운관 속 주인공들의 대사가 새빨간 거짓말인 줄 알지만, 그로 인해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에 속아도 남는 장사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겪은 여자로서 연애관 또한 남다르다. 청춘남녀의 환상을 홀랑 깨버릴 적나라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결혼식장보다는 장례식장을 찾는 일이 더 빈번해지는 나잇대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그런 그녀가 여자이고 싶은 순간은 일주일에 한 번 병원 가는 날이다. 젊고 근사한 의사 선생 덕분에 병원 가는 맛이 난다. 설렘에 옷을 사기도 하는데 순전히 자신의 기분을 위해서다. 담당 의사가 거만한 늙은이였다면 잠옷 위에 코트를 걸치고 갔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노 요코 할머니의 사는 이야기에 빠져있다 보면 책은 어느새 늙어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노년을 헤쳐나가며 작가는 그녀만의 독신 생활을 살아간다. 삶이란 생각처럼 멀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과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짠하기도 하고 피식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이유도 없이 기운이 솟았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사노 요코 작가의 ‘사는 게 뭐라고’ 본문 중-

사노 요코 작가는 자신이 괴팍하다고 말하면서 주변 상황과 친구들에 대해 끊임없이 투덜거린다. 하지만 가장 많이 비꼬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90세 노모가 치매를 앓다 요양원에서 생을 거뒀기에 자신도 언젠가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세간의 잡다한 정보는 주로 TV를 통해 얻는데 요즘은 사람들 말이 너무 빠르고 자막도 작아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씁쓸해한다. 앓고 있던 유방암이 이미 뼛속까지 전이됐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시종일관 죽음보다는 고통스럽게 질긴 삶을 더 두려워한다. 남은 생을 열심히 즐겁게 살고 싶은데 따라주지 않는 늙은 몸을 한탄한다.

그리고선 깨닫는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그녀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는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 책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작가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이후 작가는 201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롤모델 없는 세상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씩씩하게 살다 떠난 작가를 떠올리면 느슨했던 주먹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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