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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혼자라고 느낄 때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12/12 08:26

이소영 / 언론인·VA 거주

초등학교 때였다. 여느 때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엄마는 뭐하길래 초등학생 하교 시간 하나 못 맞추는 거야?’ 십분 정도 지나자 화는 이내 걱정과 불안으로 바뀌었다. ‘혹시 집안에서 엄마가 쓰러졌나? 아니면 외출했던 엄마가 사고라도 났나?’ 걱정단계까지 갔던 초등학생의 심리상태는 시간이 지나면 체념으로 바뀐다. ‘기다려야지 뭐…’ 집을 비운 엄마가 돌아오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일 외에 열 살짜리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중국 작가 구오징의 그림책 ‘혼자가 아닌 날’(사진)은 맞벌이하느라 집을 비운 부모님을 기다리는 아이의 외로운 감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아이의 부모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터로 나가고, 아이는 늘 그렇듯 엄마를 배웅한 뒤 혼자 TV를 보면서 논다. 혼자 노는 것이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빈집은 여전히 무섭고 심심하다. 그러다 발견한 가족사진 속에서 할머니와 행복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는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용돈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버스에서 깜빡 잠이 들었을 뿐인데, 깨어나 보니 새로운 세계였다. 이때부터 기나긴 환상의 여정이 시작된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의 네 남매가 마법의 옷장을 통해 환상의 나라 나니아로 들어가게 되는 것처럼 아이는 신비한 사슴과 함께 숲속 깊이 들어간다.

아이는 숲속에서 혼자가 아닌 아주 특별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사슴의 소개로 신비한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구름 위를 뛰어 놀기도 한다. 하지만 문득문득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그 시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엄마, 아빠는 남겨진 쪽지를 보고 아이가 할머니를 찾아 나섰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이를 찾아 하염없이 길을 헤맨다.

이 책은 맞벌이 가정의 외동아이가 집안에 홀로 남는 요즘의 현실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동화 속 환상세계가 묘하게 합쳐져 있다. 그리고 책 속의 그림은 아이의 불안과 슬픔, 기쁨, 안도 등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글 없이 그림으로만 표현돼 있어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마치 내가 책 속의 아이가 된 것처럼 아이의 기쁨과 외로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책은 단순히 부모와 떨어져 온종일 혼자 노는 어린아이의 애처로움을 부각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아이가 굉장히 불쌍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아이는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듬뿍 받는 굉장히 행복한 아이다. 저녁에 퇴근한 부모님은 항상 나를 걱정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이의 불안감은 훨씬 덜해졌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안심하고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구오징 작가 또한 중국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에 의해 외동아이로 자랐다. 가족사진을 보다가 무작정 버스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향한다는 설정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얼개가 촘촘하고 심리 묘사가 사실적이다.

울고 있는 아이 앞에 나타난 사슴은 부모의 존재로, 함께 뛰어논 곰돌이나 고래는 형제 같은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 아이는 그렇게 막연하게 형제를 그려왔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운 시간에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상의 사슴과 곰돌이를 만들어냈다.

어린이 그림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외로움은 비단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의 감정만은 아니다. 어른이 돼서도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순간, 처절하게 외로운 순간이 있다. 다만 외로움이 익숙해져 그 외로움을 이겨낼 나만의 비법을 체득했을 뿐이다. ‘혼자가 아닌 날’의 아이와 상상세계 여행을 함께하다 보니 무뎌졌던 어린 시절 감정이 새삼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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