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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 이럴 때 이 소설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2/13 06:26

누군가 책을 왜 읽느냐고 물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인생을 훔쳐내는 쾌감이 좋아서”라고 답한다. 소설이 특히 그렇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세상에서 소설 속 주인공과 함께 또 다른 삶을 산다. 그 과정에서 재미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도 한다. 소설이 필요한 순간은 ‘나는 맞고, 남은 틀리다.’고 생각되는 순간이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이 됐을 때는 공감의 아이콘으로 변신한다.

미국 작가 조너선 프랜즌의 소설 ‘인생수정’(사진)을 읽고 노년의 삶에 대해 상상해봤다. 시간이 흐르면 부모는 늙는다. 늘 나를 돌봐주는 듬직한 어른일 것만 같던 부모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로 인식되는 순간, 안타깝게도 부모 자식이 서로 역전된 역할을 인식하는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인생 수정’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가부장적 독재자로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염세주의자 앨프레도와 속물적인 이니드, 그들의 세 자녀가 중심인물이다. 700페이지가 넘는 거대한 소설 속에서 사실상 주인공은 아버지 앨프레도이다.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가족에게도 엄격한 규칙을 강조해오지만, 정작 그 속에 타인은 없다. 그런 꼬장꼬장한 아버지가 파킨슨병에 걸린다. 어쩌면 온 가족이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머니 이니드는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을 불러 모은다.

그렇다. 그다음은 모두가 상상한 대로다. 오랜만에 모였건만 자식들은 발톱을 드러내 서로를 할퀴기 바쁘고 노쇠한 부모님은 참담한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엄마가 원한 단 하나의 소망은 크리스마스에 모여 밥 한 끼 먹자는 것뿐이다. 조너선 프랜즌 작가는 막상 가족의 식사가 이뤄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지옥에 가까운 포기인지를 700페이지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소설에서 가장 큰 갈등은 아버지 앨프레도와 큰아들 개리의 관계이다. 개리는 은행 부행장에 오를 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사회적 지위는 남부러울 것 없지만, 아내와 어머니의 고부 갈등을 지켜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다. 개리는 형제 중에서도 아버지와 관계가 제일 안 좋은데 늘 아버지를 답답해하고 짜증을 낸다. 이유는 형제 중 아버지와 가장 닮은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개리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를 인생 목표로 삼고 아버지와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산다. 나머지 가족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를 보듬으며 연대를 이어가지만 개리 홀로 외딴섬처럼 고립돼 소설이 끝날 때까지 외로운 채로 남아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을 조너선 프랜즌 작가는 소설 속 여러 장치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철도청 엔지니어로 40년 근속한 아버지는 변화와 혁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20세기 초중반까지 중추적 역할을 했던 철도산업이 쇠락해가는 사이 그 시대를 풍미했던 앨프레도 세대도 같이 쇠락해간다. 여기서 한치의 이탈도 허용할 수 없는 철도는 원칙주의자 앨프래도를, 최근 30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도로, 항공산업은 자식들을 상징한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를 연상하게 하지만, 왠지 모르게 웃기면서도 서글프다. 소설의 배경은 분명 미국 중산층 가정인데 한국의 명절 풍경이 겹쳐지는 이유는 뭘까. 명절 때 모인 친척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다. 아버지가 큰형을 편애했다는 등, 유산이 공평하지 않았다는 등의 소리는 명절 단골 대사다.

한때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아버지 세대가 어느새 늙고 병들어 요양병원을 전전하는 시대가 왔다. 소설 속 아버지 앨프레도는 가족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오점투성이인 채로 삶을 마치지만, 남겨진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인생을 수정해 나갈 기회를 얻는다. 실수 가득한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하나씩 수정해가는 이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한다.

이소영/언론인·VA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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