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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크리스마스 눈물'

하루의 의미는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었다로 압축된다.

우주는 무관심하지만, 한 삶의 출몰은 짧은 하루의 경계선을 확장한다.

오늘(25일)은 예수가 태어났다. 또 천문ㆍ물리ㆍ수학의 '예수급'인 아이작 뉴턴도 세상에 나온 날이다.

2000년 전 태어난 예수와 370년 전 태어난 뉴턴은 기존의 세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태어남(出)은 세상에 한방을 먹이는 거다.



때론 사라짐(沒)도 강펀치를 날린다.

오늘은 네로와 채플린이 죽은 날이기도 하다. 동화이자 일본 만화 '플란다스의 개' 주인공 네로(원래는 넬로(Nello)지만 일본인들이 받침을 발음하지 못해 네로가 됐다)는 25일 새벽 성당에서 얼어 죽었다. 무성 영화의 최고봉 찰리 채플린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다가 이날 숨을 거뒀다.

1976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플란다스의 개'는 잔혹했다. 그 전까지 만화는 깔깔 웃고,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영웅과 바보들의 해피엔딩이었다.

네로는 달랐다. 당시 아이들이 최초로 접한 잔인한 비극. 고립되고 누명 쓰고 애처롭게 죽는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도입부에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랄라 라랄랄라"로 시작되는 밝은 주제 음악이 마지막 편에서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로 끝난다. 파트라슈와 끌어안고 죽은 네로. 그 위 펄럭이는 커튼 뒤로 루벤스의 성화 2점(십자가에 올려지는 예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이 드러난다.

비애감이 결합한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가 찰리 채플린은 살아있는 네로였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가 힘들게 살림살이를 하면서 9살이 되기 전까지 보육원에 2차례나 보내졌다. 후에 영화로 성공했고, 공산주의자로 몰려 추방되기도 했다. 가장 슬펐기 때문에 가장 웃길 수 있었던 채플린의 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

"올바른 순간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삶의 모순 중 하나다."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거울은 내 가장 친한 친구다. 내가 눈물 흘릴 때 절대 웃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을 올려다봐라. 내려다보고만 있다면 절대 무지개를 찾지 못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살다 보면 아무 쓸모없는 싸구려 물건이 명품 중 명품이 될 때가 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 선물 살 돈이 없는 가난한 부부가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에게 고급 머리빗을, 아내는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에게 시곗줄을 선물한다. 머리카락을 자른 아내에게는 머리빗이 필요 없고, 시계를 팔아 버린 남편에게 시곗줄은 소용없다.

몇천 몇만 달러의 명품이, 부부의 포옹과 눈물을 대신할 수는 없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사회부는 소외된 한인 노년층을 심층 취재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였고 더 나가 한인사회의 현재이자 미래를 짚어봤다. 지난해에는 노숙자의 세계로 들어가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노년층과 노숙자 세계에는 채플린처럼 너무 슬퍼, 웃는 이웃들이 많다. 네로처럼 편견과 차별, 자본주의의 횡포와 냉혹함에 얼어 죽는 이웃도 많다.

크리스마스는 아름다운 루벤스의 성화지만, 그 그림 밑에는 시름하고 스러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크리스마스는 복잡한 하루다. 위대한 성자가 태어났고, 인류 최고의 지성도 태어났다. 가장 비참한 죽음도, 가장 애처로운 모습도 태어났다. 가장 풍요로운 아름다움이 있고, 가장 혹독한 빈곤이 있다.

오늘 하루의 경계선을 확장하려면, 눈물이 필요하다. '눈물은 영혼을 씻어내는 비누'라는 코엘료의 말이 맞다.


김석하 사회부장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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