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생명을 지탱하는 힘
최미자 / 수필가
또 두 해 전쯤, 여고 동창회에서 반갑게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던 고인의 통통하고 환한 얼굴이 지금도 내 눈에 아롱거린다. 아픈 동안 전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퍽 안타깝고 최근 두어 달은 암이 온 몸에 퍼져서인지 곁의 가족을 꽤나 힘들게 했다고 한다. 아마 아내에게 정을 떼느라 그랬을 거라며 우린 유가족께 위로를 드렸다.
한편 고인은 고국의 양로원에 계시는 87세 어머니를 걱정하며 앞으로 5년은 더 살아야한다는 말을 자주했다는 이야기가 눈물겹다. 미국에 살아야 하는 장남으로서의 강한 책임감과 효심이 그를 암에서 긴 세월 살아남게 했던 위대한 힘이 아니었을까. 유가족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감기 앞에서 비실거리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속이 뒤틀려 6일간 죽도 못 먹던 나였지만, 그의 마지막 장례식에 참여하겠다는 한 생각이 나를 바꾼 것이다. 나물에 비빈 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며칠 후 가족과 함께 장거리 나들이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장례식에서 근사하게 생긴 관 속에 다소곳이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전혀 다른 외계인의 얼굴 같아서 난 지금도 혼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 앞서거나 조금 늦게 떠나면서 당연히 맞아야 할 죽음이 아니던가.
또 다른 한 사람의 죽음은 한국의 고시원에서 외롭게 병사한 위암 환자였다. 그는 중학생 때 내가 담임하며 가르쳤던 제자였다. 질문도 잘하고 장난기 넘치는 야무지고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가난을 극복하고 대학까지 마친 회계사였기에 그가 대견스러웠다. 우리가 30년 후에 다시 만나던 날, 그가 담배를 즐겨 피우는 걸 보고 나는 은근히 걱정했었다.
친구를 통해 나에게 전해진 선물을 열어보며 얼마나 속이 깊은 사람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던 지난날이다. 언제나 명랑하여 친구들도 그의 속내를 잘 몰랐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가족도 싫고 우울증 환자가 되어버렸을까.
그는 치료를 받던 6년 동안 생의 낙오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부인과도 별거 중이었고 가까운 친구와 마지막 카톡을 나눈 게 마지막 대화라고 전해졌다. 고시원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가 최초의 발견자라 하니,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나의 제자처럼 병고로 외롭게 홀로 눈을 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슴이 아프다.
고인이 된 두 사람 모두 오래 앓았고 죽음을 대처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렵겠지만 일상에서 작은 감사한 일을 찾았더라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인생여정을 바꿀 수 있지는 않았을까. 응급실에 두 번이나 들어 가 살아 난 나는 매순간을 주어진 마지막 시간으로 여기면서 후회할 일을 줄이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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